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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예수의 집, 청춘의 집

입력
2016.01.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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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적한 정류장. 남루한 차림의 소년이 카드처럼 접힌 신문을 수북이 팔에 낀 채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에는 유복해 보이는 또래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자(母子)를 흘끔 본 소년은 잠시 딴청을 피우다 아이의 발을 툭툭 쳤다. 소년의 표정에는 심술이 줄줄 흘렀다. 엄마는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를 팔로 감싸 안고 소년과 대치했다. 시샘인지 심술인지 소년의 톡톡 차기는 계속됐다. 양측의 신경전은 모자가 버스에 오르고야 끝났다. 남겨진 아이는 눈가를 소매로 쓱 닦더니 가로수 밑동을 몇 번 더 찼다. 눈물이라도 흘린 걸까? 나는 기다리던 버스에 탔고, 아이도 아무 일 없었던 듯 버스에 올랐다. 아이 입에서는 당시 익숙했던 대사가 흘러나왔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파듯이…

그 훨씬 전, 까까머리 중학생의 눈을 잡은 성경구절이 있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리라’ 부자가 되고 싶던 나는 이 구절이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성경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요’ 부자라도 마음만 가난하면 천국에 갈 길이 있었다. 이후 가난한 마음은 내게 화두가 되었다.

당시 목사는 가난한 마음을 영적으로 풍성한 마음이라 했다.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설명이다. 동서양은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다. 동양에선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있어도 교만하지 말고 없어도 슬퍼하지 말자는 것이 우리 지혜다. 이에 비해 서양은 딱 부러진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가난은 가난이고 풍성은 풍성이다. 부자인 하느님 앞에선 모두 가난하니 신앙만 있으면 된다는 설교는 그래서 애처롭다. 예수는 쉽게, 누구나 알아듣게 말한다. 가난한 마음은 진짜 가난한 이의 마음일 뿐이다. 가난한 이가 몸을 부리는 집, 마구간으로 오신 이유다.

소년은 엄마 품에 안긴 아이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하지만 힘도 없고 엄마도 없다. 가난한 마음의 진면목이다. 당시 아이 엄마가 소년을 떼어내기보다 안아줄 수는 없었을까.

사랑하는 남녀의 포옹은 매춘과 다르다. 서로에게 ‘같은 마음’이 있는 까닭이다. 그걸 사랑이라 하든 뭐라 하든. 그때 아이 엄마가 소년과 ‘같은 마음’이 되었다면, 값싼 동정이 아닌 ‘소년의 마음’으로 소년을 안았을 터. 이것이 가난한 마음의 또 다른 진면목이다. 예수가 천한 십자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아이 행동을 심술로만 여기는 한 가난한 마음에 이를 수 없다. 하느님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길을 이렇게 예비했다.

노동5법 개정안에 마음이 아프다.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다지만 내용을 보면 저임금의 비정규직만 쏟아낼 듯하다. 풍랑을 헤쳐 나가는 기업을 돕는 일은 당연하지만, 그 방법이 선원을 바다에 던지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길게 보면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1.x배’로 하는 식의 규정을 두어 기업도 정규직을 뽑을지, 비정규직을 뽑을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 낫다. 고민해야 혁신도 있다. 적정임금은 국내소비에도 중요하다.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지난해 600조원을 넘어섰다. 재벌 곳간의 재물은 모른 척하고 임금만 깎는 노동유연화는 공동체를 침몰시킬 수 있다. 법 개정이 정말 공존을 지향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비정규직의 삶을 살펴야 한다. 어느 장로님처럼 ‘내가 가난해 봐서 아는 데’가 아니라, 진정 소년의 안타까운 마음이어야 한다. 꿈이 꺾인 채 머물 집도 없이 빚을 안고 쪽방에 갇힌 젊은이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고, 소년에게 비정규직에게 ‘죽도록 노력했어?’라고 묻는 것은 위험하다. 임꺽정을 불러내는 주문이 될지도 모른다. 가난한 마음이 되는 것. 이는 큰 부자가 천국에 이르도록 하느님이 예비한 길이다. 사랑하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이분들이 천국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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