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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약관 고쳐라” “못 한다” 공정위-은행권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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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약관 고쳐라” “못 한다” 공정위-은행권 충돌

입력
2016.01.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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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소비자의 권익 침해 소지”

은행권 “개정땐 대출금리 인상 불가피”

캐스팅 보트 쥔 금융위는 뒷짐

예금이 가압류 당하면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현행 은행 약관을 개정하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방침이 은행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은행들은 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공정위로선 은행 관련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지원 사격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금융위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해 말부터 ‘은행여신거래 기본약관’(표준약관) 개정을 추진 중이다. 공정위는 표준약관 가운데 ‘가압류에 따른 기한이익 상실’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조항은 개인이나 기업이 제3자에 진 빚을 갚지 못해 은행 예금에 가압류(자산 동결)가 걸릴 경우, 은행이 가압류가 걸린 예금을 은행 채무를 갚는 데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대출 만기까지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기한이익’이 가압류 결정과 함께 사라져 은행은 차주에 나머지 채무마저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 약관 조항이 소비자에 불리하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압류 결정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차주의 신용 악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은행이 가압류 시점부터 예금을 회수하면 가압류 신청을 한 제3자는 채권을 챙기기 어려워 채권자 간 불평등 소지도 있다고 공정위는 본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기한이익 상실 시점을 가압류에서 본압류 단계로 늦추는 걸 골자로 하는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표준약관 개정은 보통 공정위가 사업자단체(은행연합회)의 약관 개정 요청을 받아 착수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이번엔 은행연합회의 반대로 한국소비자원에서 개정 요청을 받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르면 올 하반기에 약관 개정을 마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은행권은 공정위의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압류 시점이 아닌 가압류 이후 5, 6개월 걸리는 본압류 시점부터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될 경우 가압류 채권자보다 후순위가 돼 은행의 대출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은행들의 가장 큰 우려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본, 독일 등 외국도 가압류에 따른 기한이익 상실을 인정하고 있고, 이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있다”면서 “만약 은행들이 공정위 개정안을 따를 경우 대출 금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피해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시중은행 10여곳은 20일 오전 서울 은행연합회에서 대책 회의를 열고 공정위가 표준약관을 개정하더라도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모았다.

약관법상 표준약관은 개별 업체가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위가 경우에 따라 표준약관을 따르지 않는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은행권 일각에선 “공정위가 시정 명령을 내리면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키를 쥐고 있는 건 금융위다. 은행권에서 금융위의 협조가 없으면 공정위의 표준약관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정위가 2014년초 은행 표준약관을 개정했을 때에도, 당시 은행들이 바뀐 약관을 따른 데는 금융위 협조가 결정적이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융위의 협조를 이끌어 내겠다”고 했지만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논란에 특별한 입장이 없고, 개입할 계획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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