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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 속에… 약국 외벽에… 노량진 학원가 홍보전쟁

입력
2016.01.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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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알려야 산다” 생존 경쟁

수험생 자주 드나드는 업소마다

잘 차려 입은 강사 홍보물 나붙어

강 인원수가 곧 수익과 직결되는 고시학원과 강사는 말할 것 없고 강의 교재를 판매하려는 출판사까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울 노량진에선 음식점 메뉴판이나 건물 외벽 필름에 강사 얼굴을 끼워 넣는 협찬광고가 흔하다. 호프집 메뉴판에 등장한 학원강사 프로필.
강 인원수가 곧 수익과 직결되는 고시학원과 강사는 말할 것 없고 강의 교재를 판매하려는 출판사까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울 노량진에선 음식점 메뉴판이나 건물 외벽 필름에 강사 얼굴을 끼워 넣는 협찬광고가 흔하다. 호프집 메뉴판에 등장한 학원강사 프로필.
토스트 전문점 출입문과 아이스크림 메뉴판에도 학원강사 프로필이 등장해 있다.
토스트 전문점 출입문과 아이스크림 메뉴판에도 학원강사 프로필이 등장해 있다.

25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호프집 앞, ‘김치전(2장) 5,000(원)’으로 시작해 ‘생맥주 500cc 2,000(원)’으로 끝난 입식 메뉴판 밑으로 양복차림의 남자 사진이 이어져 있다. 사진 옆으로 ‘소방학개론’ ‘소방관계법규’ 라는 강의명과 함께 개강 날짜가 눈에 띈다. 호프집 메뉴판과 학원강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공무원시험의 메카’라는 노량진에선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조그만 음식점 앞에도 학원 강사가 등장하는 아이스크림 메뉴판이 세워져 있고 출입문엔 또 다른 강사의 홍보물이 붙어 있다.

고시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일대에선 일년 내내 홍보 전쟁이 뜨겁다. 학원 앞 식당이나 서점, 독서실, 스터디룸 등 수험생이 자주 드나드는 업소마다 사용료를 지불하고 메뉴판과 외벽에 강사 얼굴을 살짝 비치는 식의 협찬광고가 넘친다. 심지어 퀵서비스 광고 스티커에까지 이름을 박아 넣은 강사도 있다. 22일 모임 참석차 노량진을 찾은 배모(22ㆍ여)씨는 “이 동네는 처음인데 신기하기도 하고 몇몇 강사 얼굴이 나도 모르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깨알 같은 홍보효과보다 강사의 권위 실추를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노량진 소방단기학원 조동훈 원장은 “강사도 교원으로서 지켜야 할 권위가 있는데 ‘김밥 몇 천원’ 밑에 ‘000교수’라고 써넣는 건 좀 심한 것 같다. 그래서 몇몇 젊은 동료들에게 그런 광고는 하지 말라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강생 수 따라 돈 버는 강사

수강료 수익 나누려는 학원

교재 팔려는 출판사 홍보 가열

유동 인구가 많은 한 약국 외벽이 학원강사와 교재 이미지로 덮여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한 약국 외벽이 학원강사와 교재 이미지로 덮여 있다.
자동차에 걸린 학원 홍보 현수막.
자동차에 걸린 학원 홍보 현수막.

노량진 학원가에서 수강생은 곧 돈이자 생존수단이다. 기본급 없이 수강생 수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강사는 말할 것 없고 수강료 수익을 강사와 나누는 학원, 강의 교재를 한 권이라도 더 팔려는 출판사가 각각의 방식으로 홍보에 열을 올린다. 대량으로 제작해 거리에 붙이는 벽보가 학원의 홍보방식이라면 협찬광고는 주로 출판사나 강사 개인의 영역이다. 협찬광고를 게시하는 업주들은 대부분 사용료의 존재를 밝히기 꺼린다. 학원강사와 교재 이미지를 유리외벽 전면에 걸쳐 씌운 한 약국 관계자는 "아는 사람이 부탁해서 그냥 붙이라고 했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이 광고물에 등장한 강사는 “광고를 제작한 출판사에서 매달 50만원 정도를 약국에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약국 다른 쪽 유리문에는 또 다른 출판사의 광고물이 몇 개 더 붙어 있다.

거리는 불법광고물로 몸살

공중전화부스ㆍ변압기 등에 도배

구청 인력 부족으로 단속 못해

너도나도 홍보전쟁에 뛰어드는 사이 거리는 불법광고물로 몸살을 앓는다. 강사 얼굴을 내세운 학원 벽보가 공중전화부스나 교통신호 제어기, 지상변압기 등을 도배하듯 뒤덮고 있다. 길가에 세워 둔 배너나 깃발 역시 불법 광고물로 단속 대상이지만 구청의 인력부족에 한파까지 겹치면서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대로변은 기동반이 거의 매일 순찰을 돌지만 이면도로나 골목길은 민원이 발생할 때만 단속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 6개월 동안 부과된 벽보 과태료만 8,000만원이 넘는 학원이 두 곳”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액수지만 광고를 통해 거두는 막대한 수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조 원장은 “지난해 노량진에서 혼자 300억원을 넘게 번 강사가 있다. 너도나도 꿈을 꾸다 보니 홍보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노량진 대로변은 일년 내내 대형 고시학원의 벽보광고로 뒤덮여 있다. 공사장 가림막, 교통신호제어기, 지상변압기, 공중전화부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에 부착된 학원 벽보광고.
노량진 대로변은 일년 내내 대형 고시학원의 벽보광고로 뒤덮여 있다. 공사장 가림막, 교통신호제어기, 지상변압기, 공중전화부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에 부착된 학원 벽보광고.

중고생 입시 학원 합격현수막엔

16년 전 특목고 합격자까지 동원

서울 은평구의 한 입시학원이 내건 특목고 합격자 명단에 16년 전인 2000년 합격자까지 동원되어 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입시학원이 내건 특목고 합격자 명단에 16년 전인 2000년 합격자까지 동원되어 있다.
중계동 입시학원의 합격현수막엔 이번 학년도 진학 대학과 합격자가 명시되어 있다.
중계동 입시학원의 합격현수막엔 이번 학년도 진학 대학과 합격자가 명시되어 있다.

식당 메뉴판까지 동원한 고시학원가의 깨알홍보에 비하면 중고생을 상대로 한 입시학원들의 홍보방식은 간단명료하다. ‘서울대 00명, 연세대 00명…’식으로 정리한 합격현수막 이면 다 통한다. 학원이 내세운 실적을 마치 입시의 보증수표처럼 믿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합격현수막의 홍보 효과는 크다. 대입 합격자 발표가 마무리되고 1년간 다닐 학원을 결정하는 요즘 입시학원가엔 합격현수막이 넘친다.

학원 외벽에 걸지 못하게 하자

건물 내부 벽이나 게시판에 붙여

25일 현재 서울 중계동과 목동, 대치동의 거의 모든 학원에서 합격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수강생의 이름이나 진학 학교명이 기재된 현수막을 학원 외벽에 걸지 못하도록 한 서울시 조례에 따라 대부분 건물 내부 벽이나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조례를 위반하면서까지 학원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26일 은평구의 한 입시학원은 유리창 밖에 각종 경시대회 입상자와 입시합격자 명단을 빼곡하게 붙여 놓았다. 자세히 보면 16년 전인 2000년도 특목고 합격자까지 동원한 것을 알 수 있다. 중계동의 또 다른 학원에서도 2011학년도 대학 진학자 명단을 볼 수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원업무편람을 통해 개인정보제공에 동의한 경우에 한해 1년 이하의 기간 동안만 현수막에 이름을 게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본인의 동의도 없이 재수생의 이름을 버젓이 특정 대학교 합격자로 올리거나 특정대학 특정학과에 합격한 학생의 이름 옆에 ‘탈북학생’이라고 명시해 인권침해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합격현수막의 폐해는 만만치 않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캠페인팀 송화원 간사는 25일 “합격현수막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불필요한 사교육비 지출을 조장한다”며 “개인정보 유출과 차별 소지가 있는 만큼 학원 외벽뿐 아니라 건물 내부나 홈페이지 게시도 막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학원가의 홍보전이 뜨겁다. 고시학원 광고로 뒤덮인 노량진 뒷골목에선 호프집 메뉴판에까지 학원강사 프로필이 등장했다. 입시학원 역시 학벌과 서열화를 조장하는 합격현수막이 넘친다. 수강생 유치경쟁이 뜨거운 이 겨울 강사는 물론 수강생, 학부모까지 감내해야 할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학원가의 홍보전이 뜨겁다. 고시학원 광고로 뒤덮인 노량진 뒷골목에선 호프집 메뉴판에까지 학원강사 프로필이 등장했다. 입시학원 역시 학벌과 서열화를 조장하는 합격현수막이 넘친다. 수강생 유치경쟁이 뜨거운 이 겨울 강사는 물론 수강생, 학부모까지 감내해야 할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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