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윤주 연출가 초연작 시작
1년 동안 서울~부산 오가며
극단 대표 레퍼토리 10여편 공연
“젊은 기획자가 컨트롤 가능한
고만고만한 사람들만 수혜
대표 연출가들 역차별 말아야”
‘언제나 작품 올릴 수 있는 극장이 있고, 꽤 좋은 배우와 연출가들이 연극에 대해 토론하고 가르친다. 수십 명의 단원들은 함께 벌어 함께 쓰는 공동체 생활을 한다. 지방과 수도, 해외를 오가며 신작도 발표한다.’ 잘 나가는 몇 명이 좋은 원작, 좋은 극장, 좋은 제작진을 싹쓸이하는 한국 연극계에서 무려 30년을 버틴 이 ‘이상주의 연극공동체’는 이윤택(64) 예술감독이 이끄는 극단 연희단거리패다.
연희단거리패가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서울 부산을 오가며 1년 동안 극단 대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고 이윤주 연출가의 초연작을 이윤택 감독이 재연출하는 ‘방바닥 긁는 남자’(2월 12~28일)를 시작으로 극단 대표배우들이 출연하는 ‘벚꽃동산’(4월 22일~5월 15일), 이윤택의 신작 ‘꽃을 바치는 시간’(11월 10일~12월 4일) 등 10여 작품이다. 2월에는 연습실과 워크숍 및 합숙 공간을 겸한 ‘30스튜디오’를 서울 명륜동에 연다.
이윤택 감독은 25일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올해 목표는 극단의 연극 농도를 더 진하고 분명하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6년 7월 창단 때부터 연희단거리패는 이미 부산 가마골소극장, 단원 20명을 갖춘 제대로 된 극단이었다. 그 해 1월 부산일보를 그만 둔 이윤택 감독이 받은 퇴직금 660만원을 쏟아 부어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의 극장을 얻은 덕분이었다. 이 감독은 “창단 멤버 중에 연극 전공자가 별로 없었다. 성질 더러워 어떤 극단도 받아주지 않는 말썽쟁이들, 부두극장에서 소개 받은 단원들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연희단거리패로 들어온 초창기 멤버가 박지일 배우,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이다. “내가 엄청나게 표를 많이 팔아서 남는 건 없어도 빚지지는 않았어요. 그때 표 사준 사람이 문재인 대표, 노무현 전 대통령, 김사인 신경숙 같은 문인들이었죠. 그리고 밥을 극단에서 해먹었죠. 쌀죽에 라면 넣고 끓인 꿀꿀이죽.”
당시 서울 지방 간 문화 격차는 지금보다 커서 서울 무대에 올린 연극만 부산에서도 대박이 났다. 연희단거리패는‘산씻김’(88년 바탕골소극장) ‘시민K’(89년 동숭아트센터) ‘오구’(90년 대학로극장) 등을 차례로 서울서 올리는 차별화 전략으로 “80석 극장에 300명씩 모여드는” 공연을 부산에서 이어갈 수 있었다. 운영비가 부족할 때는 이 감독이 드라마 대본을 쓰고, 지방문화행사 연출하며 번 돈을 제작비로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4년 서울에 연극을 가르치는 우리극연구소를, 1999년 말 연극인공동체 밀양연극촌을 만들었다. “산울림, 현대, 실험 같은 당대 최고 민간 소극장”의 초대를 받다가 2004년 서울에 게릴라극장을 마련했고, 2006년 극장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연희단패는 지방에서 대부분 못 배우고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꾸렸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함을 깨부수고 비범한 배우로 가는 방법은 훈련밖에 없어요. (단원들은)발성, 발음, 화술, 신체 움직임 다 배워야 하죠. 내 연극 연기가 너무 강하다, 과장됐다고 싫다는 사람도 있어요. 연기는 일상을 뒤집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하지만 표현 스타일은 단원마다 다 달라요. 김소희가 다르고 오동식이 다르고, 고 이윤주가 달랐죠. 이번 ‘방바닥…’은 제가 연출하지만 이윤주 연출 스타일 그대로 갑니다.”
이윤택 감독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연극인 검열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을 했던 그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희곡심사에서 100점을 받고도 탈락했고, 이달 초 부산 기장군 안데르센 어린이극장 위탁 운영자에서도 탈락했다.
지난 주 한 기자간담회에서 “그저 내 수명이 다한 거”라고 말을 아꼈던 그는 “이제껏 극단 규모에 비해 정부 지원은 많이 받지 않았다. 저 뿐만 아니라 오태석 선생 신작도 정부 지원 사업에서 다 떨어졌다”며 현실태를 비판했다. “지금 국공립단체 제작이나 지원 수혜자는 다 젊은 기획자가 컨트롤 가능한 고만고만한 사람들이죠. 지금 한국연극 분위기는 굉장히 불온합니다. 유럽이나 일본만 해도 나라를 대표하는 연출가들한테 집중 지원하는데, 우리는 수혜 많이 받았다고 역차별해요. 노인에 대한 야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죠.”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김소희 대표가 “극단 운영하려면 지원금 신청 계속해야 한다”며 이 감독을 말렸다. 한해 최대 8,000만원을 받았던 게릴라극장 운영 지원금마저 지난해부터 전액 삭감됐다. “저는 좌파도 아니고 권력과 아무 상관도 없어요. 지원금 신청은 계속 할 겁니다.”
올해 공연을 끝으로 이윤택 감독은 부산으로 내려간다. 서울 게릴라극장 살림은 김소희, 오동식 등 40대 연극인들이 꾸린다. 김소희 대표는 “이미 많은 걸 넘겨주셨지만 우리는 선생님 같은 에너지가 없어 대를 잇지는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지금 제가 할 일은 제가 했던 연극을 정리해 레퍼토리화하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출발했던 부산 소극장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죠. ‘유럽처럼’ 정부가 집중 지원하면 서울에서 작품 올리냐고요? 뭐 생각해보고요. 하하”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김다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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