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한 탐험가 헨리 워슬리(55)가 홀로 남극 횡단에 나섰다가 목표지점을 눈 앞에 두고 25일 세상을 떠났다. 71일 동안 1,500km를 이동한 워슬리는 남극점을 통과한 뒤 도착지점을 불과 48km 앞두고 탈진해 칠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장기부전으로 숨졌다.
워슬리는 지난해 11월14일 세계 최초로 외부의 도움 없는 나홀로 남극 탐험에 나섰다. 참전 상이용사들을 돕는 인데버재단의 기금 마련과 어니스트 셰클턴의 남극 탐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원정이었다. 워슬리의 계획이 발표되자 애초 10만파운드(약 1억7,000만원)를 목표로 했던 인데버 재단의 모금액은 14만파운드(약 2억4,000만원)을 돌파했다.
워슬리는 셰클턴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의 루트를 따라갔다. 셰클턴은 1916년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남극 탐험하다가 빙산에 부딪혀 길이 막히자 대원들을 이끌고 남극을 걸어서 통과했다. 때문에 워슬리는 셰클턴이 애초 계획했던 대로 남극 버크너섬에서 출발해 남극점을 통과한 뒤 셰클턴 빙하지역을 지나 반대편에 도착하는 루트를 계획했다.
워슬리는 도전에 앞서 2015년 10월 영 BBC와 인터뷰에서 “75일의 여정을 계획하고 있으며 식량은 80일치로 넉넉하게 가져간다”고 밝혔다. 실제 그는 썰매에 80일 분의 음식과 텐트, 장비를 가득 싣고 스스로 끌면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탐험을 진행했다. 97년 노르웨이 탐험가 보르게 우슬란드가 단독으로 남극 횡단을 성공했지만, 짐을 실은 썰매는 대형 연을 이용해 끌고 갔다는 점에서 단독 행단은 사실상 워슬리가 처음이다. 2012년 영국 탐험가 펠리시티 애스톤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남극을 통과했지만 중간중간에 물자를 전달받으며 진행했다.
그의 도전은 사실상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도전 71일 째인 이달 22일 심각한 탈진과 탈수 증세에 눈보라까지 겹쳐 이틀 동안 텐트를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는 라디오 교신으로 행군 포기의 뜻을 밝히고 헬기로 칠레 푼타 아레나스로 옮겨졌다. 병원 도착 즉시 복막염 수술을 받았지만 패혈증성 쇼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워슬리의 타계 소식에 영국 전역은 애도 물결에 잠겼다. 월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부부나 해리 왕자도 동참했다. 윌리엄 왕세손은 트위터에 “그는 멋진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었다, 해리왕자와 내가 그와 친구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우리는 친구를 잃어 슬프지만 그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영감의 원천으로 남아있을 것이다”는 글을 남겼다. 셰클턴의 손녀 알렉산드라도 “탐험계의 큰 별이 졌다”고 애석해 했다.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페이스북에 “그는 나라를 위해 수많은 날들을 봉사했으며 가족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사람”이라며 애도했다.
남효정 인턴기자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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