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대작들이 비용 전쟁을 치르는 사이, 조용히 시장에 침투해 짭짤한 수익을 거두는 영화들이 있다. 바로 리마스터링 영화들이다. 영화 제작 비용을 평균 50억이라고 잡았을 때, 리마스터링 영화는 겨우 25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러닝타임 100분 기준 약 2,000만원). 재개봉 효과로 인한 마케팅 비용도 새로 제작한 영화보다 저렴하다. 최근에는 재개봉 영화가 다양성 영화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아 관객들도 많이 찾는 추세다. 게다가 포털사이트ㆍVODㆍIPTV 등 다양한 플랫폼이 생기면서 수익 창구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리마스터링은 영화시장에서 가성비의 절대 갑(甲)으로 평가 받고 있다.
■어떤 영화들이 리마스터링 됐나
지난해는 재개봉 영화들이 유독 많았다. 흑백영화, SF, 드라마, 애니메이션, 다큐, 멜로, 스릴러, 코미디 등 장르도 다양하다. '모던타임즈'(1936), '대부'(1972), '지옥의 묵시록'(1979),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아마데우스'(1985), '백 투 더 퓨처'(1987), '공동경비구역JSA'(200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2001), '피아니스트'(2002), '이터널 선샤인'(2005), '피아노의 숲'(2007),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러브 액츄얼리'(2013) 등이 재상영됐다. 특히 '백 투 더 퓨처'는 10월 21일 전 세계 극장에서 재개봉됐다. 30년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 덕분에 뜨거운 화제를 모으며 개봉 첫날에만 480만 달러(약 54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터널 선샤인'은 국내 재개봉 열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개봉 당시 관객수인 16만8,000명을 훌쩍 넘어 누적 관객 수 49만 명을 달성했다.
모든 재개봉 영화들이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소장가치가 있고 시중에서 접하기 어려운 작품일수록 호응도가 높다. 또 시기를 타기도 한다. 일례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주목을 받으면서 '메멘토', '인터스텔라' 등이 재개봉을 결정했다. 장르의 다양성을 채워주는 역할도 한다. '이터널 선샤인'이 '뷰티인사이드' 이후 부재했던 멜로 자리를 차지하면서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리마스터링 왜 선호할까
리마스터링은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충성도 높은 고정수요층도 분명 존재한다. 신작보다 판권도 저렴해 잘만 고르면 의외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VOD 시장에서는 '리마스터링 재개봉 영화'라는 타이틀을 걸고 두 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린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기술이 발전하면서 재개봉도 하나의 틈새시장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CGV는 다양성 전문관 아트하우스를 만들어 다수의 리마스터링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김대희 CJ CGV 홍보과장은 "최근 여러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다시 보는 관객이 많아졌다. 영화 관람 행위에 대한 가치가 제고되면서 재개봉 붐이 일어나고 있다. 재개봉 영화 대부분은 작품성과 흥행성이 이미 검증돼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 큰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로 명작을 즐길 수 있으며 특히 중ㆍ장년층 관객에게 재개봉 영화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외화뿐만 아니라 국내 영화도 해당된다. '미술관 옆 동물원', '올드보이', '공동경비구역JSA'등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이 개봉 10주년, 15주년 등을 기념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올해도 리마스터링은 쭉
올해 극장가에도 재개봉 영화가 줄을 섰다. 지난 14일 상영을 시작한 '러브레터'(1999)는 "오겡끼데스까"(건강하십니까)라는 유행어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2013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개봉이다. 21주년을 맞아 올 겨울을 또 한 번 멜로 감성으로 촉촉이 적시고 있다. 이미 7만 여 관객이 관람해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같은 날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도 재개봉했다. 2014년 재개봉 후 2년 만에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개봉 당시 상영관 8개에서 6만 여 관객을 동원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올해 제작 1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을 확정해 관심을 끌고 있다.
'세기의 영웅'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1978) 역시 이달 재개봉을 확정했다. 한층 선명한 화질로 화려한 액션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주윤발, 장국영 주연의 '영웅본색'(1986)은 개봉 30주년을 맞아 2월 18일 HD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탄생한다. '영웅본색'은 입가에 성냥개비 하나 물고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는 장면으로 남자들의 로망 영화로 유명하다. '쇼생크탈출'(1994)도 2월 스크린을 예약했다. 탈옥영화 중 최고로 손꼽히는 '쇼생크탈출'의 재개봉 소식에 벌써부터 팬들의 관심이 치솟고 있다.
황지영 기자 hyj@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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