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버킨백’으로 더 유명한 프랑스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과 영화감독 자크 드와이옹의 딸, 역시 가수 겸 배우인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동생. 루 드와이옹(33)의 이름 앞에는 늘 세계적 유명인사인 가족의 이름이 먼저 놓인다. 스무 편의 영화에 크고 작은 역할로 출연했고 지방시, 클로에 같은 명품 패션 브랜드의 모델로 활약하며 부모와 언니만큼이나 유명해진 그가 싱어송라이터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2012년 데뷔 앨범 ‘플레이시스(Places)’로 호평을 받은 뒤 지난해 두 번째 앨범 ‘레이 로(Lay Low)’를 내놓은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드와이옹은 23일 서울 한남동의 공연장 언더스테이지에서 공연 직전 본보와 만나 새 앨범에 대해 “살아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전하기 위해 가능한 아날로그 기계를 써서 불순물까지 담아 라이브로 녹음했다”고 설명했다. 어둡고 짙은 색깔의 허스키한 저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는 “듣는 사람의 인생과 감정을 꺼내놓을 수 있도록 여백을 많이 둔 거울 같은 앨범”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프랑스의 중견 가수 겸 프로듀서인 에티엔 다오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데뷔작과 달리 이번엔 그가 캐나다 인디 록 밴드 팀버 팀버의 테일러 커크와 함께 프로듀서를 맡아 제작을 책임졌다.
아버지의 영화 ‘아주 (작은) 사랑’(1988)에서 주연을 맡으며 연기를 시작한 그는 배우와 모델을 병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서른이 다 돼서야 자신의 길을 찾았다. “10세 때부터 일기를 썼고 혼자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그때만 해도 여자 가수의 목소리는 고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평생 남에게 공개된 삶을 살다 보니 노래와 그림만큼은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도 이유였을 겁니다. 그러던 중 에티엔 다오가 음악은 남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해 용기를 내게 됐어요. 그땐 당연히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후 인생이 뒤바뀌었네요.”
누군가의 뮤즈가 되기를 기다리며 30년을 살았던 드와이옹은 뒤늦게 자신이 뮤즈보다 창작자에 어울린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모른 채 30년을 보내다니 인생이란 참 이상하다”며 “연기도 좋아하지만 감독의 판정을 기다려야 하는 연기와 달리 음악은 내 결정에 따라 내 안의 세계를 내보낼 수 있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드와이옹의 음악적 재능은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그는 2013년 프랑스의 그래미상에 해당하는 ‘음악의 승리상(Victoires de la Musique)’에서 셀린 디옹과 프랑수아즈 아르디를 제치고 여자가수상을 차지했다. 드와이옹은 “우리 가족은 상 따위 신경 안 쓴다며 숨기지만 나는 자랑스럽게 거실에 놓아뒀다”며 “상을 받은 것도 매우 자랑스러웠지만 대중에게 많은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더 큰 상이었다”고 말했다.
유명인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건 극단적인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삶이다. 드와이옹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점이라면 남들이 선입견을 갖고 대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의식하며 반응한다는 거죠. 반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다는 건 축복입니다.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인 건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부모의 덕이 아니어도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늘 생각하게 된다는 건 끔찍한 일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하지만 음악을 할 때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음악만으로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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