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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악몽 같던 2박 3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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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악몽 같던 2박 3일의 기록

입력
2016.01.2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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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5시50분부터 45시간 고립

수천명 제주공항서 노숙 난민촌 방불

25일 오후 3시 드디어 제주 벗어나

45시간 동안 단 1명도 제주섬을 빠져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했다. 따뜻한 남쪽 섬을 기대하면 제주로 휴가를 왔던 관광객 등 9만여명은 하늘길과 바닷길 모두 끊기면서 겨울왕국에 갇혔다. 사상 최악의 항공대란을 빚은 제주공항의 사흘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23일 오전 10시 제주도 전역에 대설특보가 발효됐다. 32년만의 기록적인 폭설과 함께 7년만의 한파가 제주를 덮쳤다. 이날 오후 5시 50분 폭설과 강풍 등으로 제주국제공항이 멈춰섰다. 제주공항 주변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눈이 쏟아지면서 항공기 이ㆍ착륙이 불가능했다. 이날 하루만 제주 기점 항공기 296편이 결항됐다.

1월 23일 제주 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가운데 대설로 인해 항공기가 결항된 제주공항. 제주=김형준기자
1월 23일 제주 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가운데 대설로 인해 항공기가 결항된 제주공항. 제주=김형준기자

오전 11시30분 부산행 에어부산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객들은 비좁은 항공기내에서 6시간이나 기다리다 ‘모든 항공편 결항’ 소식을 듣고서야 공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중국 관광객들과 항공사측은 숙소 제공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천재지변으로 항공기가 결항될 경우 항공사측이 숙소를 제공할 의무가 없지만 갈 데 없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숙소를 요구했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제주도가 통역요원 4명을 배치하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결항이 속출하자 공항 카운터는 승객들의 문의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사용자 폭주로 휴대전화는 한동안 먹통이었고, 곳곳에선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충전을 위해 콘센트 점령이 시작됐다. 의자의 대체재로 활용할 공항 카트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도 벌어졌다. 기댈 자리를 찾아나선 체류자들로 인해 제주공항의 벽면에는 거대한 인간 띠가 형성되기도 했다.

오후 6시가 다 돼서야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찾은 공항 내 편의점은 이미 초토화됐다. 도시락, 컵라면, 즉석밥,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이 있어야 할 식료품 코너 매대는 진작에 텅텅 비었고, 과자와 음료수는 사재기 행렬 앞에 속수무책으로 사라졌다.

저녁이 되자 공항내 머물던 사람들은 버스와 택시 정류장으로 몰려들었다. 버스정류장은 포화상태였고, 택시정류장엔 100m 넘게 늘어섰다. 일부는 아예 눈발을 헤치면서 공항 밖으로 걸어나갔다.

23일 제주지역 폭설로 많은 항공편이 결항된 가운데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길을 돌린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있다. 김형준기자
23일 제주지역 폭설로 많은 항공편이 결항된 가운데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길을 돌린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있다. 김형준기자

공항 내부에서는 1,000명에 이르는 체류객들이 노숙 준비에 들어갔다. 휴대전화 충전을 위해 충전구역은 물론 공항내 벽에 설치된 콘센트를 찾아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밤이 되자 제주도가 노숙 중인 체류객들을 위해 공항에 생수 수십 박스와 담요, 간식거리 등을 조달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어떤 이들은 담요나 생수를 구경조차 못했다. 추위를 막기 위해 종이박스나 신문지를 깔고 항공기 재개를 기다리면 밤을 새웠다.

같은날 오후 11시를 기해 제주 해상에 풍랑경보가 발효되면서 대형여객선 운항까지 전면 통제되는 등 바닷길도 막히면서 제주섬은 완전히 고립됐다.

24일 날이 밝았지만 전날과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 청년이 뜨거운 물을 못구해 컵라면을 부숴 먹고 있었다. 공항의 모든 카트는 의자로 변신했다. 대기번호를 받기 위한 행렬도 끝이 없었다.

제주공항은 전날에 이어 이날에도 폭설과 난기류 현상이 발생하면서 오전 6시까지였던 항공기 운항 중단 시간이 정오까지로 연장됐다. 그러나 제주공항 주변 기상여건이 나아지지 않자 한국공항공사는 항공기 운항 통제를 이날 낮 12시에서 25일 오전 9시까지로 늦췄다 다시 25일 오후 8시로 연장했다. 제주공항이 이틀째 전면 폐쇄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공항에서 항공기 운항 재개만을 기다리던 체류객들은 점점 늘어가는 운항 중단 시간에 할 말을 잊었다.

밤이 되면서 또다시 이틀째 노숙이 시작됐다.

노숙생활이 이어지면서 공항내에 비닐로 만든 집이 생겼고, 텐트까지 등장했다. 종이박스로 집이 만들어졌고, 옷도 내걸리면서 제주공항은 흡사 난민촌으로 변했다.

항공기 결항 사흘째인 25일 제주국제공항에 여행용 텐트가 펼쳐졌다. 제주=김형준기자
항공기 결항 사흘째인 25일 제주국제공항에 여행용 텐트가 펼쳐졌다. 제주=김형준기자

25일 오전 공항주변 기상이 조금씩 나아졌다. 마침내 이날 정오를 기해 42시간만에 제주공항 항공기 운항 재개 결정이 내려졌고, 공항 안내방송을 통해 오후 3시부터 항공기 운항이 이뤄진다는 멘트가 흘러나오자 체류객들은 들뜨기 시작했다.

기쁨도 잠시 제주공항은 전쟁터로 변했다. 대형 항공사들은 개별적으로 승객들에게 탑승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내 큰 혼란은 없었지만, 일부 저비용항공사의 카운터 사정은 달랐다. 대부분이 항공사는 대기번호를 받은 23일 결항된 항공기 탑승자를 1순위로 수송하기로 했지만 일부 항공사인 경우 대기번호를 받으라는 안내 받지 못한 승객들이 많아 이곳 저곳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오후 2시쯤 제주공항 3층 출발 심사대에는 손에 탑승권을 쥔 승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온 이모(46)씨는 “드디어 제주를 떠나게 됐다”며 “어쨌거나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며 부인과 딸의 손을 잡고 심사대를 지나갔다.

오후 2시48분 김포행 이스타항공 여객기(B737-700)가 승객 149명을 만석으로 태우고 첫 번째로 이륙하면서 45시간에 걸친 제주공항 악몽은 일단락됐다.

제주=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제주=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한파로 활주로가 폐쇄됐던 제주공항에 25일 오후부터 운항이 재개되자 항공권을 구입한 승객들이 탑승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파로 활주로가 폐쇄됐던 제주공항에 25일 오후부터 운항이 재개되자 항공권을 구입한 승객들이 탑승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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