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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4개월짜리 노사정 대타협?

입력
2016.01.2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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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9ㆍ15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하고 노사정위원회 활동을 중단했다. 2014년 8월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한 뒤 18개월만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개혁’ ‘17년만의 대타협’이라던 광고도 신기루가 되었고, 노사정위원회는 다시 한 번 개점휴업 상태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합의에만 목숨 걸고 매달렸지 그 이행을 관리하고 사후 갈등을 조정하는 일에는 누구도 힘을 쏟지 않았다. 합의문 서명이 마르기도 전에 노사정은 마치 파국을 바라기라도 하듯 가시 돋친 언어를 주고받았고, 언론은 갈등에 양념을 더해 국민의 아침 식탁을 자극적으로 만들었다.

타협의 과정과 결과를 따져보면 이미 노사정 합의 이면에 파국이 예정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각자의 머릿속 셈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노총은 9ㆍ15 합의를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논의의 시작으로 이해했다. 합의는 개혁의 원칙과 방향을 제안하는 내비게이션으로 간주되었고 길을 선택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일은 추후의 과제로 고려되었다. 이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찬반이 공존하는 노총의 조직 특성상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따라서 노총이 합의유지를 바랬다면 국민을 상대하기에 앞서 조직 내부 이견을 통합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어야 한다.

노총과는 달리 정부여당은 9ㆍ15 합의를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마무리 이자 개혁 추진을 위한 엔진으로 간주했다. 합의 직후인 9월 16일 정부여당은 ‘노동시장 개혁 5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9ㆍ15 합의’에 따라 기간제법 및 파견법 조정안이 노사정 특위 논의를 거쳐 국회에 제안될 예정이었음에도 여당은 성급한 입법제안으로 합의파기 논란을 부추겼고 야당의 거친 반대를 조직화했다. 결국 국회 내 논란으로 입법이 어려워지면서 정부의 개혁 목표는 취업규칙 변경 및 일반해고 지침에 집중되었고 두 개 지침의 성급한 제안으로 대타협 파국을 불러오고 말았다.

경영계도 합의의 지위에 대한 판단은 정부여당과 다르지 않았다. 노사정 합의과정 내내 개혁에 대한 비전 없이 정부 프로그램에 메뉴를 끼워 넣는 전략으로 일관했던 경영계는 합의와 동시에 정부와 국회를 압박해 입법을 재촉했다. 합의위반을 이유로 풍찬노숙 하던 노총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9ㆍ15 합의로 개혁의 쟁점 다툼이 끝났다고 주장하며 입법청원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합의를 둘러싼 노사정의 생각이 이토록 달랐으니 합의가 온전히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원인이 무엇이든 9ㆍ15 합의는 노총의 파기선언으로 빛이 바랬다. 그 결과로 합의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우리 노동시장의 문제가 심각하고 개혁이 시급하다는 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노사정 공동 인식에 기반해 문제 해결의 해법을 모색한 결과가 9ㆍ15 합의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 취지와 목적 그리고 의의를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향후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상의 합의 정신을 존중해 정책을 모색해야 하며, 노동계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조정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현재 정부와 여당이 보여주고 있는 정책 의지 과잉과 통합적 조정 능력의 부재다. 특히, 노동시장 개혁의 이슈를 관리해야 할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와 대타협 추진 과정의 여러 문제를 성찰해 통합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여당이 청와대 비서실로 기능한다는 세간의 이야기는 매우 우려스럽다. 노동시장 제도개혁과 관련한 대통령 담화의 주요 내용을 주무 부처와 여당 대표가 사전에 모르고 있었다는 언론 보도도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제라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개혁의 국론을 통합하기 바란다.

4개월을 버텨 온 노사정 합의에 균열이 생겼고 혼란과 수습이 반복되는 과정에 있으나 그 동안 유지해 온 사회적 합의의 의의와 목적은 훼손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학자 멘슈어 올슨은 이해 조정의 집단적 해법이 갖는 경제적 비교우위를 ‘개인적 수준의 경쟁과 다툼이 초래하는 비용보다 집단적 조정으로 기대되는 효익이 크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이해관계의 사회적 조정을 위한 역량 결집이 없다면 만인간 경쟁은 불가피 하며 그 경우 우리 노동시장이 갖는 구조적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 질 가능성이 높다. 다시 한 번 문제 해결의 사회적 해법을 기대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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