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인승 봅슬레이의 간판 원윤종(31ㆍ강원도청)-서영우(25ㆍ경기도BS경기연맹)는 월드컵 5차 대회를 앞둔 지난 21일(이하 한국시간) 반가운 얼굴과 마주했다.
고(故) 맬컴 로이드(영국) 코치의 부인이 대회가 열리는 캐나다 휘슬러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로이드 코치는 불모지였던 한국 봅슬레이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으로 대표팀 합류를 코앞에 둔 지난 4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로이드 코치는 40년 이상 봅슬레이 경력을 자랑한 베테랑 지도자로 영국과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러시아 등을 거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직전 한국 대표팀과 손을 잡았다. 그는 봅슬레이 선진 기술을 전수하며 한국의 봅슬레이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다. 또 전세계 대부분 트랙을 훤하게 꿰뚫고 있어 선수들에게 맞춤형 훈련을 시켜왔다.
남편을 여읜 로이드 코치의 부인은 원윤종과 서영우에게 자신이 특별 제작한 메달을 전달했다. 메달 앞면에는 “평창(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 뒷면에는 “로이드 코치가 가르쳐준 것을 잘 되새겨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감동적인 선물에 숙연해진 원윤종과 서영우는 사상 첫 금메달을 로이드 코치의 영전에 바쳤다. 원윤종-서영우는 23일 캐나다 레이스켈레톤연맹(IBSF) 2015~16시즌 월드컵 5차 대회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43초41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출신이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이드 부인은 경기장에서 이들의 경기 장면을 직접 봤다. 원윤종-서영우는 로이드 부인의 응원에 금메달로 보답했고, 시상식장에서는 하늘을 향해 세리머니를 펼치며 로이드 코치를 추모했다. 원윤종은 경기를 마친 뒤 IBSF 측과 가진 인터뷰에서 “로이드 코치님이 계시면 좋겠지만, 그래도 사모님이 우리를 지켜봐 주셔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로이드 부인한테서 선물 받은 메달을 내보이면서 영어로 “땡큐, 고머(로이드 코치 호칭)”라고 하늘의 스승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원윤종-서영우의 1, 2차 시기 기록은 각각 51초63, 51초78이다. 한국 팀과 똑같은 1분43초41을 기록한 스위스 팀이 공동 1위, 한국ㆍ스위스 팀에 0.01초 뒤진 러시아 팀이 3위에 올랐다. 둘은 또 이번 금메달 획득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한국 봅슬레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다. 썰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기적을 쏘아 올린 원윤종-서영우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과 북미 국가 선수들을 제치고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앞서 원윤종-서영우는 올 시즌 월드컵 1, 2, 4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3차 대회에서는 6위를 차지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의 꿈도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썰매는 어느 종목 보다 트랙에 대한 적응도가 성적에 큰 영향을 미쳐 내달 완공되는 평창 트랙에서 반복 훈련을 하면 안방 어드밴티지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원윤종-서영우는 24일 열린 6차 대회에서는 1분43초54의 기록으로 9위에 그쳤다. 1차 시기에서는 51초63으로 9위, 2차 시기에서는 51초91로 11위를 기록했다. 들쭉날쭉한 기록 편차를 줄이는 것이 향후 과제로 지적된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은 “원윤종과 서영우가 현대자동차가 특별 제작한 전용 썰매를 타고 27일 스위스에서 열리는 유럽컵 대회에 출전한다”고 밝혔다. 당초 이들은 월드컵 시리즈보다 급이 낮은 유럽컵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대차가 만든 썰매가 마침내 완성되면서 실전 테스트를 겸해 유럽컵에 참가하기로 했다.
한편 스켈레톤의 윤성빈(23ㆍ한국체대)도 동메달을 따며 세계랭킹 2위로 올라섰다. 윤성빈은 24일 열린 월드컵 6차 대회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45초24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차 시기에서 52초75로 4위에 오른 윤성빈은 2차 시기에서 52초49로 기록을 단축해 전체 26명의 선수 중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윤성빈은 올 시즌 월드컵에서 다섯 대회 연속 메달을 획득했다. 1차 대회에서 12위에 오른 그는 2차에서 4위를 차지해 5위까지 주는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3차 대회에서 동메달, 4ㆍ5차 대회에서 연속 은메달을 획득했다. 6차 대회 결과 윤성빈의 랭킹은 3위에서 2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금메달은 세계 최강 마르틴스 두쿠르스(32ㆍ라트비아)에게 돌아갔다. 그는 올 시즌 6차례의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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