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실패가 예정된 기획이었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엔 역사가 없다, 단팥 정도가 있고 가족사가 있을 뿐”(여성학자 정희진)이다. ‘양대 지침’이라 부르는 노동개혁도 마찬가지다. 비전은 고사하고 그럴듯한 내용도 논리도 없는, 그 자체가 부재(不在)의 기획이었다.

비전부재. 무릇 개혁이란 설레는 전망을 담아야 할 텐데, 이 부실한 기획은 청년세대와 사회 전체의 비정규화라는 절망만을 배달한다. “지금도 파견 따위의 임시직은 널려있다. 일회용 취급 당하는 걸 못 견디겠다”는 게 이미 늙어버린 청년들의 호소임을 모르는가.

논리 혹은 상식부재. 고령화 대책이라 하기에도 뭣한 임금피크제를 청년실업 해소책으로 둔갑시킨 것은 붕어빵 장사를 어업 종사자로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비논리다. 절감된 비용이 투자 재원으로 쓰일 것이라는 정부의 확신도 미신에 가깝다. 700조원이 넘는 유보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는커녕 면세점 사업에나 혈안인 게 재벌과 대기업의 수준이다. 저성과자를 ‘합리적’으로 해고할 수 있어야 공정하다는 ‘공정해고론’은 부당해고가 판을 치는 현실에선 통할 수 없는 비상식이다. 임금체계 합리화가 필요하다며 성과주의 임금론도 들고 나왔다. 잘라 말하겠는데, 정부가 할 일 아니다. 노동부가 경영컨설턴트인가.

내용부재. 개혁이라 이를 만한 내용이 없다. 노동개혁이라 치려면 불평등의 근원인 원ㆍ하청구조나 위장도급 문제를 짚었어야 했다. 하다못해 작업장에 횡행하는 경영자의 ‘갑질’을 바로 잡을 방안이라도 담아야 했다.

전략부재. 균형을 상실한 일방적 대책을 사회적 합의로 처리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순진하기도 했거니와 이를 협상하겠다고 나서서 합의까지 한 한국노총도 도긴개긴이다. 작가 고종석의 말에 빗대면 노동부는 자기 수준에 딱 맞는 파트너를 두고 있는 셈이다.

애당초 실패를 ‘의도’한 ‘정치적’ 기획은 아니었을까. 노동의 미래라곤 찾을 수 없는 부실한 내용과 논리, 현실 불가능한 접근전략, 거기에 선거라는 특수한 맥락을 겹쳐 보면, 이 의혹은 그럴듯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역사’ 프로젝트로 보는 이는 드물다. 역사를 소재 삼아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색깔론에 터 잡은 선거 전략이라는 추측이 더 설득력 있다. 노동개혁도 유사하다. 냉소에 빠진 청년세대를 중장년층(혹은 노동조합)과 갈등케 함으로써 탈 정치화를 공고히 하고, 노동계를 철밥통을 고수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야당을 민생을 내팽개친 대안부재 세력으로 낙인 찍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정치적 효과는 외려 실패를 통해 극대화되고 유지된다. 성공한다 해도 노동개혁의 성과는 초라할 것이 분명한 반면, 실패는 ‘비난의 정치’를 가동하는 데 효과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혹시 있을 지지층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성공적 마무리보다는 논쟁을 지속시켜 긴장을 유지케 하는 게 더 낫다.

9월 노사정 합의가 있자마자 해고지침 등을 무리하게 들고 나온 성급한 행보나, 합의파기 이후에도 성찰보다는 책임전가와 일관된 추진만을 강조하는 정부와 여당의 모습이 실패를 의도한 기획이라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 음모론적 복기가 사실이라면 쉽게 이용 당한 노동개혁은 심각한 절망과 낭비만 생산했다. 엄중한 삶의 문제인 노동문제를 한낱 선거 전략의 소재로 전락시키고 말았으니, 당분간 ‘좋은’ 고용, 청년담론, 민주주의, 공정성장과 분배, 여성 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냉소에 가로막혀 불가능해 질 것이다. 허약하나마 공론장을 제공해 온 사회적 대화체제도 신뢰를 잃고 종편으로 대체 될지 모른다. 사회적 자원 낭비도 심각하거니와 논의에 참여한 학자들의 전문성이나 관료들의 노고 역시 정치의 희생양으로 무의미하게 소진됐다. 무엇보다 냉소와 적대만 남은 폐허에서 충혈된 눈을 한 청년들의 텅 빈 얼굴을 어찌 마주 해야 하나. 글을 마치는 사이 가까운 섬나라 ‘딸기 세대’(대만 청년세대)의 소식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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