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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 참다 결국 ‘펑’… 일에서 삶으로 무게추 옮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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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 참다 결국 ‘펑’… 일에서 삶으로 무게추 옮겨라

입력
2016.01.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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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와 잠시라도 이별 “쉴 땐 완전히 잊어야”

제주 방전된 휴가자로 북적, 느린 호흡 속 해방감 느껴

사회적 인식은 걸음마 수준… 정신건강 효율성 뒤늦게 관심

대기업 일부서 심리상담 첫발 “스트레스도 정기검진 받아야”

직장인 M(31ㆍ여)씨는 지난 가을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매일 야근에 지친 M씨는 자연 속에서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지친 심신이 치유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집 장만도 못했고 아이 키우려면 돈도 많이 들겠지만 아등바등 살지 말자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장기 휴가를 내고 함께 내려간 남편, 세살배기 아들과 보낸 시간은 그야말로 꿀맛 같았다. 6년 차로 한창 일할 나이에 M씨가 회사를 관둔 큰 이유는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은 M씨는 두 달 가까이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야근을 해야 했다. 일찍 끝내는 게 밤 11시이다 보니 아이 얼굴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고, 상사와의 트러블도 심해졌다. 그는 “왜 쫓기듯 살아왔나 싶다”고 했다.

요즘 제주에는 아예 한두 달 집을 빌려 사는 외지인들이 늘고 있다.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으로는 방전된 심신을 다스리기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생활 속에서 겪는 번아웃의 영향이 크다. 초등학생 두 아이와 함께 여름방학 동안 제주에서 지냈다는 교사 김수민(42)씨는 해안가 근처 펜션을 빌려 눈 뜨면 바닷가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김씨는 “늦잠 한번 못 자고 빽빽했던 스케줄 때문에 늘 압박감을 느끼며 살았는데 느슨하게 한달 반을 지내다 보니 이게 사는 행복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제주 여행을 즐기다 아예 터를 잡기도 한다. 애월읍에서 마농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양지원(51)씨는 제주에 2년 반 전 가족들과 함께 이주했다. 광고대행사에 근무했던 양씨는 “불규칙한 생활과 업무 스트레스가 컸는데 이제는 오후 3,4시 정도면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어 삶의 만족도가 200% 이상 올라갔다”고 했다.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업무와 떨어진 휴식이다. 정신과 전문의 김한규씨는 “바쁘고 경쟁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가 이어지는 이상 번아웃을 호소하는 환자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일 중심에서 삶 중심으로 무게추를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스 관리 전문가들은 회사와 떨어진 2주 후에야 일 스트레스를 벗어나 온전한 휴식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휴가를 더 길게 갖고 취미 등을 가져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을 넓히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잘 쉬고 놀아야 업무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회복 탄력성도 증가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부분을 무시하고 있다. 참을 만큼 참다가 어느 순간 ‘뻥’하고 터져 버리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중증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이르러서야 정신과 등을 찾는다.

직장 내 상담 창구 마련이 시급하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미흡하다. 현대해상 행복쉼터의 고희정 실장은 “예전에는 스트레스 관리를 개인 문제로 떠넘겼지만 최근에는 서비스업종뿐 아니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심리상담사를 배치하는 회사도 늘었다”며 “근로자의 육체 외에도 정신적 부분도 챙겨야 업무 효율도 오른다는 점을 인식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노동과 건강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 교수 요아힘 바우어는 그의 책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에서 기업이 노동자의 정신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처럼 스트레스 관리 역시 개인과 회사 모두가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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