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동 평화 중재자’ 선언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지지”
91억원 규모 무상원조 약속도
“모두 일대일로에 들어오길 촉구”
성장 도우며 영향력 확대 의도
중국이 중동 평화의 건설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그 동안 중국 외교의 대원칙이었던 불간섭주의에서 탈피, 국제 분쟁의 중재자로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더구나 미국은 점점 발을 빼는 상황에서 중국이 중동에 손을 뻗치면서 이 지역 판세에 지각 변동이 생기는 것 아니냔 전망도 나온다.
19일부터 중동 3개국을 순방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1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의 아랍연맹 본부에서 “우리는 중동 평화의 건설자, 중동 발전의 추진자, 중동 공업화의 조력자, 중동 안정의 지지자, 중동 협력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국제 사회의 책임이자 중동 평화의 근원”이라며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선에 기반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지했다.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도 시 주석은 “정치적 대화로 근본적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 정상이 중동의 민감한 현안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례적 일이다.
중국은 공허한 말에 그치지 않고 곧장 실천에 나섰다. 시 주석은 이날 팔레스타인에 5,000만위안(약 91억원)의 무상 원조를 약속했고,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리비아 예멘에도 모두 2억3,000만위안(약 420억원)의 인도적 지원을 밝혔다. 시 주석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의 정상 회담에선 전력과 교통, 인프라 건설 등 모두 15개 사업에 총 150억 달러(약 18조2,000억원)를 투자한다는 합의가 나왔다. 앞서 지난 20일 시 주석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정상 회담에선 도로 철도 항구 공항 원자력발전소 등 14개 경제 협력 사업에 대한 양해 각서도 체결됐다. 중국은 걸프협력회의(GCC)와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로 했다.
중국의 과감한 서진(西進) 정책에는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해상 실크로드) 구상과 경제 협력을 앞세워 미국이 철수한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게 외교가의 설명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이날 “중국은 중동에서 ‘대리인’을 찾는 대신 평화 협상을 독려할 것이며, 세력을 구축하는 대신 모두가 일대일로로 들어올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중동지역 갈등과 분쟁에 무력으로 직접 개입하며 미국의 대리 정권을 세우는 데 주력해 온 미국의 행태를 사실상 겨냥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중동의 성장을 도우며 문제의 근원을 치료하겠다는 전략이다. 시 주석은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드는 테러의 궁극적 해결은 중동 지역의 산업화와 발전”이라며 “그래야만 이 지역의 젊은이들이 폭력과 극단주의 사상, 테러리즘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천하지정립 행천하지대도’(立天下之正立 行天下之大道·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길을 간다)는 맹자의 말까지 인용, 중동 아랍인의 근본 이익을 따지는 데서 출발하겠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미국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패트릭 크로닉 신미국안보센터 국장은 “중국은 미국의 힘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중동에서 혼란스런 정국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강대국으로 인식되길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 주석은 22일 이란에 도착했다. 시 주석은 이날 이란 매체 기고문에서 “중국과 이란은 2,000년 전부터 실크로드로 연결돼 있었다”며 “앞으로도 일대일로를 통해 공동 번영의 길로 가자”고 밝혔다. 시 주석은 23일 귀국 예정이다. 닷새간 이어진 중동 3개국 순방은 2013년 시 주석 취임 후 처음이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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