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핀 꽃
존아노 로슨 기획ㆍ시드니 스미스 그림
국민서관 발행ㆍ32쪽ㆍ1만원
같은 곳을 지나도 본 것이 서로 다르다. 별 뜻 없이 보아도 그렇다. 이른바 선택적 지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도 한다. 눈과 마음은 꽤나 가까운 사이다.
아빠와 딸이 손을 잡고 타박타박 걸어간다. 기다란 바게트와 푸성귀가 비죽 고개를 내민 장바구니, 발치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보니 저녁거리를 사 들고 돌아가는 길이다. 크림빛 종이에 그려진 담백한 먹빛 그림 속에서 아이가 입은 후드 티만이 선연한 빨강이다.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아빠는 그저 앞만 본다. 아빠의 시야에 들어오는 건 가야 할 방향, 돌아야 할 모퉁이, 기다려야 할 건널목, 인사를 나눠야 할 이웃, 그리고 걸핏하면 잡은 손을 놓고 길을 벗어나기에 고개를 돌려 찾아야 할 어린 딸뿐이다.
아이는 이리저리 둘러본다. 지나가는 이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자동차 탄 이의 얼굴을 보고, 사람들 발길에 채일 듯 아슬아슬 종종걸음 치는 비둘기를 본다. 그리고 전봇대 그늘에 숨어 핀 키 작은 민들레를 본다. 민들레 향기를 맡으며 미소를 짓는다.
‘거리에 핀 꽃’은 캐나다 시인 존아노 로슨이 실제로 딸과 산책하며 겪은 일을, 시드니 스미스가 흑백 대비와 화면 분할이 인상적인 그래픽 노블 스타일로 그려낸 책이다. 글은 없다. 그저 카메라를 들고 뒤따르는 성실한 관찰자처럼 아빠와 딸의 짧은 여정을 다양한 시점과 구도의 장면들로 고스란히 재현했을 뿐이다. 그들과 함께 걸으며 그들이 보는 것을 우리도 똑같이 보라는 듯이.
겹겹이 늘어선 건물과 미로 같은 길들, 바삐 오가는 각양각색 사람과 자동차 틈바구니에서 아이는 ‘꽃’을 본다. 보도블록 틈새에서, 축대의 돌 틈에서, 후미진 건물 귀퉁이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깨알 같은 꽃들을 잘도 찾아낸다. 놀랍게도 어느새 아이 손에는 조그마한 들꽃다발이 들렸다.
이윽고 들어선 공원에서, 조깅하는 사람들과 키 큰 나무들과 드넓은 잔디밭 사이에서 아이는 내팽개쳐진 새를 본다. 벤치 위에 고단한 몸을 누인 남자를 보고, 목줄에 매여 산책 나온 이웃집 개를 본다. 아이는 차갑게 식은 새의 주검 위에 노란 꽃 몇 송이를 올려놓는다. 노숙자의 발치에도, 개의 목줄에도 꽃을 꽂아 준다. 이제 아이는 꽃이 놓여야 할 자리를 보는 걸까. ‘본다’는 건 정말 무얼까.
아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꽃이 있다. 꽃이 놓인 자리마다 먹빛 그림에 고운 빛깔이 배어든다. 따뜻하고 아름답다. 전래동화 속 빨간 모자는 잊어야겠다. 이렇게 사랑스런 빨간 모자가 있으니.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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