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 매킬로이(27ㆍ북아일랜드)가 조던 스피스(23ㆍ미국)와 올해 첫 맞대결에서 먼저 웃었지만 뒷맛이 썩 개운치는 않았다. 세계랭킹 1위 스피스에 ‘슬로(늑장) 플레이’ 경고가 주어지면서다. 랭킹 3위 매킬로이는 21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 골프클럽(파72ㆍ7600야드)에서 막을 올린 유럽프로골프투어(EPGA) 아부다비 HSBC 챔피언십(총상금 270만 달러ㆍ약 32억7,000만원) 첫날 1라운드에서 버디 8개와 보기 2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
이날 관심은 온통 동반 플레이에 들어간 세계랭킹 1ㆍ3위간 맞대결에 쏠렸다. 매킬로이는 1위 스피스, 또 다른 신성 리키 파울러(28ㆍ미국)와 동반 라운딩의 부담감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비교적 만족스러운 플레이를 펼쳤다. 한달 전에 받은 시력 교정수술에 아랑곳없이 매킬로이는 깜짝 선두로 나선 아마추어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23ㆍ미국)에 2타 뒤진 공동 3위로 출발했다. 미국 남부감리교대학에 재학 중인 디섐보는 이날 이글 1개와 버디 7개를 몰아치고 보기는 1개로 막아 8언더파 64타를 적어냈다. 뒤이어 헨릭 스텐손(40ㆍ스웨덴)이 7언더파 65타로 2위에 자리했고 스피스는 공동 7위로 밀렸다.
스피스는 다소 들쭉날쭉했다. 버디 6개를 잡았으나 보기 2개를 교환하며 4언더파 68타에 머물렀다. 경기 뒤 매킬로이는 “시작부터 이렇게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 하게 돼 더욱 흥분됐다”며 “긴 휴식 뒤 다시 시작할 때 정상 감각을 찾기까지 4~5일쯤 걸리는 게 일반적인데 불과 두 시간 정도 만에 될 때도 있다. 이번은 후자인 거 같아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반면 첫 UAE 방문길에서 “매킬로이를 어느 정도까지 막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던 스피스는 1라운드 매킬로이에 판정패를 당한 것도 모자라 한층 강화된 ‘슬로 플레이’ 규정에 걸려 체면을 구겼다. 이는 추후 라운딩에도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이라 주목된다.
스피스는 4번 홀 티잉 그라운드로 걸어갈 때 첫 경고를 받았고 8번 홀 티 박스에서는 퍼트하면서 할당된 시간을 초과했다며 다시 경고 조치됐다. 결국 마지막 홀인 9번 홀에서 슬로 플레이 판정이 내려졌다.
스피스는 이날 두 차례 경고에도 벌타를 받지 않았다. 종전대로라면 선수 개인에게 비공개로 통보됐지만 새 규정을 적용한 탓에 경고 사실만으로도 실명이 공개됐다.
새 규정에 따르면 조의 첫 번째 샷을 하는 선수는 50초, 그 다음 선수들은 40초 안에 샷을 해야 한다. 슬로 플레이 판정을 두 차례 받으면 2,800달러(약 34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EPGA투어 측이 톱랭커 스피스에게 새 규정을 엄격히 적용한 건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라운드 후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스포츠전문방송 ESPN은 “스피스가 새로운 EPGA 정책의 희생자가 됐다”고 불평했다. 미국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EPGA가 슬로 플레이 경고를 줘 스피스를 괴롭혔다”고 평하기도 했다.
스피스는 “매킬로이의 플레이는 굉장했다. 매우 도전적인 골프코스에서 믿기 힘든 라운드를 펼쳤다”면서도 슬로 플레이 경고에 대해선 “나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매킬로이도 세계랭킹 1위에게 엄격하게 적용된 새 규정에 대해 “때론 심판진들이 상식 선에서 할 필요가 있다”고 두둔했다.
반면 존 파라머 EPGA 경기위원장은 “새로운 규정에 따라 경기 진행이 느린 조를 선택한 뒤 그 중 시간 규정을 위반한 선수에 한해 슬로 플레이 판정을 내렸다”며 “진행 지연 여부는 출발 시 각 조의 간격 유지에 따라 결정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안병훈(25ㆍCJ그룹)은 선두에 5타 뒤진 공동 12위(3언더파 69타)에 올라 우승권에서 다음 라운드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정재호기자 kem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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