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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기억 속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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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기억 속 동굴

입력
2016.01.2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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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청하려는데 시야에 어른거리는 그림이 있다. 가족사진 한 장. 오래전 잃어버린 사진이건만, 별안간 떠오르는 게 이상하다. 다들 가벼운 나들이 복 차림. 나만 보이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있다. 제복이라면 질색하는 주제에, 그땐 그게 멋있고 특별해 보였나 보다. 뒤로는 울진 성류굴 입구. 점점 기억의 틀이 잡힌다. 초등학교 3학년, 1980년 초여름 무렵이다. 서쪽 지방에선 제복 입은 사람들이 민간인들을 군홧발로 압살하던 시절. 당시엔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몰랐다. 사진 속 표정들은 모두 밝고 즐거워 보인다. 만 35년이 지났건만, 성류굴 안 풍경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외계 생명체의 화석 같은 종유석들이 신비스럽기도 징그럽기도 했던 것 같다. 곳곳에서 진동하던 물방울 듣는 소리도 기괴한 배경음이었다. 공룡이나 외계인이 나타날 수도 있을 거라는, 열 살 꼬마다운 상상도 했었다. 어떤 황홀경이나 공포 같은 걸 그때 의식했을까. 만지면 독이라도 묻어나올까 무서우면서도 자꾸 손대고 싶었던 그 미끄덩하고 차가운 돌의 질감이 유독 선명하다. 이 지면에 언젠가 쓰기도 했거니와, 대장내시경 사진을 보고 그곳을 떠올린 적 있다. 멀어진 시간의 깊이와 거리만큼 더 울창하고 기이해진 모습으로 역습해온 기억 속 동굴. 왜 느닷없이 숙면을 방해하며 떠올랐을까. 한 번쯤 되새겨 방문해 달라는 자연의, 그리고 내 안의 기별인가 싶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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