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증발’ 두 번 우는 예비후보
전북 김제 완주 지역구에 가보니
설연휴 홍보물 발송하고 싶지만
주소 명단 제공 안돼 발만 동동
전북 김제ㆍ완주 지역구는 ‘깜깜이’ 선거구다. 이 곳은 선거구 재획정 여부에 따라 임실이 추가되거나 김제와 완주가 분리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김제는 부안과 합쳐지고, 완주는 인근의 무주ㆍ진안ㆍ장수(무진장)ㆍ임실 중 무진장과 통합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김제ㆍ완주 예비후보들이 무진장ㆍ임실로 넘어가 홍보전을 펴고, 반대로 무진장ㆍ임실 지역 예비후보가 김제ㆍ완주로 넘어와 명함을 돌리는 등 예비후보는 물론 유권자도 선거관리를 하는 선관위도 매우 혼란스러운 선거구로 꼽힌다.
지난 20일 오전 완주군 운주면사무소에 열린 군수 신년 하례식장 풍경은 이런 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하 10도의 강추위에 면사무소를 찾은 주민들은 90도로 허리를 연신 꺾어대는 장정들 사이를 지나면서 모두 3장의 명함을 받았다. 20대 총선 예비후보와 선거사무원들이 건넨 홍보명함이다. 한 주민은 “명함에 출마지역 표시가 안 돼 있어 ‘어디로 나오냐’고 물었는데, 모두들 씨익 웃고 말더라”고 했다. 실제 명함에는 출마지역 대신 ‘무진장 좋은 우리동네’ ‘일혀라 000’ ‘풍요롭고 공정한 국가 건설’과 같은 두루뭉술한 표현만 들어 있다.
맨 앞에서 인사하던 김정호 후보는 “한 번에 100여명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흔치 않다”며 추위도 잊은 채 명함을 돌렸고, 1층 현관의 유희태 후보도 “이렇게 돌려도 선거구가 넓어 하루 1,000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며 바삐 움직였다. 김 후보와 유 후보는 김제ㆍ완주 지역 예비후보다. 반면 2층 행사장 입구에서는 이름이 적힌 조끼도 입지 않은 채 한 후보가 “안호영 변호사입니다”라는 말만 침이 마르도록 반복했다. 안 후보는 무진장ㆍ임실 지역에 등록한 예비후보이다. 안 후보는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명함 먼저 돌리는 중”이라며 “지금은 남의 지역이라 예의상 조끼는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ㆍ유 후보는 안 후보가 내심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입밖에 불만을 내지는 않았다. 자신들도 언제든 무진장으로 넘어가 홍보를 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실제 유 후보는 이날 행사 직후 70㎞ 떨어진 진안 노인복지관으로 달려가 명함을 돌렸다.
선거구 획정 지연이 예비후보의 발목을 잡는 사례는 이 뿐이 아니다. 예비후보는 최대 홍보행사인 출판기념회에도 등록된 지역구 주민만 초청해야 했다. 유 후보는 “선거법 해석상 출판기념회는 ‘통상 범위의 지인’을 초청해 축하를 받는 자리로 제한됐다”며 “선거구 획정 지연 때문에 등록지역이 아닌 무진장의 지인은 초청할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홍보물 발송에도 애를 먹고 있다. 가령 김제ㆍ완주에 등록한 유 후보가 무진장 지역에 홍보물을 발송하려고 해도 선관위가 선거구 미획정을 이유로 가구 주소와 명단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 후보는 “홍보물이 설 연휴 사나흘 전에는 배송돼야 가족들이 모였을 때 입에 한번이라도 오를 수 있다”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이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15일 시작된 예비후보 홍보기간은 총 120일이다. 그 사이 40일이 허송세월 지나가버렸지만, 지금까지 여야의 선거구 획정 협상을 되돌아보면 한숨은 더 커진다. 불공정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 후보는 “선거구가 넓기도 넓지만 선거구 획정이 안 된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인사를 다닐 수도 없어 속이 탄다”고 했다.
글ㆍ사진 완주ㆍ진안=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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