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부천서 시작… 20%가 도입
최저임금보다 18% 많은 6629원
상위법과 충돌 이유 시행에 소극적
작년 10월 정부 차원 논의 시작에도
생활임금 개정안 국회 통과 어려워
“공공기관 입찰 시 인센티브 등
민간부문 적극 참여도 유도해야”
법정 최저임금이 근로자의 적정한 생계 유지를 보장하지 못하는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건 최근 일이 아니다. 2~3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들 중심으로 최저임금을 보완하는‘생활임금제’가 도입이 확산되고 있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증가세에 탄력이 붙긴 어려울 전망이다. 지지부진한 입법 탓이다. 어렵사리 물꼬가 트였지만 법제화 문턱에 가로막힌 셈이다.
부천 시작으로 지자체들 속속 도입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주차요금 정산원으로 5년째 근무 중인 김모(51)씨의 월급통장에는 1년 전부터 20만원이 더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2월, 소속이 용역업체에서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로 전환되면서 ‘생활임금제’의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시는 직접 고용한 계약직에게 시간당 최저임금보다 1,107원 많은 6,687원을 지급했다. 그전까지 하루 8시간 근무 기준 120만원으로 최저임금(월 116만6,220원) 수준이었던 김씨의 월급은 140만원으로 올랐다. 김씨는 “20만원이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그 덕에 한 달에 한 번 더 삼겹살 외식을 하고 헬스장에도 다니고 있다”며 “대우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직장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고 말했다.
생활임금은 1994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지역 시민단체와 공무원노조가 도입 논의에 불을 지핀 뒤 세계 140여개 도시로 확산됐다. 국내에서 처음 이를 조례로 만들어 시행한 곳은 2013년 12월 경기 부천시다. 최저임금보다 7% 가량 많은 시급 5,580원을 시가 직접고용 한 근로자들에 지급한다는 게 조례 내용이었다. 광역단체로는 서울이 지난해 생활임금을 채택하며 첫 발을 뗐다. 모두 14억4,6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1,039명이 혜택을 봤다. 올해 서울의 생활임금은 시간당 7,145원으로 최저임금(6,030원)의 117% 수준이다. 지난해 4월 현재 생활임금제를 도입했거나 검토 중인 지자체는 모두 28곳으로 이들의 생활임금액 평균은 지난 해 최저임금보다 18.8% 많은 6,629원이었다. 올해도 대전과 세종시, 전남도, 서울시교육청 등이 생활임금제를 시행키로 하는 등 도입 지자체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민간 부문에는 강제 못해
생활임금의 산정 방식은 국가ㆍ지역별로 다양하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준이 상대적인 데다 지역마다 특성도 상이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가계 지출과 소득을 모두 고려하는 반면 미국은 지출을 주로 반영한다. 서울은 생활임금 산정을 위해 3인 가구 가계 지출과 주거ㆍ교육비, 물가상승률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강석 서울시 노동정책과장은 “서울의 인구 통계 및 비싼 주거비와 사교육비 현실 등을 두루 고려해 자체 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생활임금 도입을 추진하는 쪽은 공공부문을 디딤돌 삼아 민간 분야 확산을 꾀한다. 그러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 한계다. 서울시는 민간 분야 적용의 중간 단계로 용역ㆍ민간위탁 사업 종사자들에게도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지만 범위가 넓고 법률 검토도 필요해 도입 시점을 예상하긴 어려운 상태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개별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거나 캠페인을 전개하는 방식이 고작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활발한 생활임금 논의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소득양극화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며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도입 기업에 대해 공공기관 입찰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민간 확산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생활임금’ 도입 법적 근거 만들어야
정부 차원에서는 지난해 10월 최저임금위원회 제도개선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생활임금이 논의 대상이 됐다. 결국 종착지가 임금 인상이라면 방식이 문제다. 노동계는 뜻있는 지자체들이 최저임금 보완 수단으로 생활임금을 도입하려 할 때 적용 범위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정도는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지자체들이 적용하고 있는 생활임금은 최저임금과 시중노임단가(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하는 제조업 단순노무종사자 임금, 현재 8,209원) 사이에서 대개 결정된다.
사용자 측은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태도다. 일단 최저임금부터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건비 상승은 되레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민간부문에서 보면 최저임금도 시장임금보다 높은 수준인데 공공부문이 앞장서 임금을 높여 버리면 시장이 교란돼 부작용이 발생하기 십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최봉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장 인건비 부담이 생길 수 있지만 직장에 대한 만족감 상승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이직률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어 전체 고용의 질은 올라갈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의지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말 기준 생활임금 도입 비율은 224개 지자체 중 20% 정도다. 아직 높은 수치는 아니다. 눈치를 보는 지자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활임금조례가 근로기준법ㆍ최저임금법 등 상위법에 어긋난다는 게 법제처 유권해석이다.
국회 차원에서는 최저임금법에 ‘생활임금’ 조항을 신설해 생활임금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법 개정안(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이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노사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법안인 점과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하면 19대 회기 내 국회 통과는 어려워 보인다. 송주현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상위법과의 충돌을 이유로 생활임금조례 제정에 소극적인 지자체를 유인할 수 있다”며 “지자체장 선거에 맞춰 생활임금 의제 만들기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 생활임금
주 40시간 노동만으로 기본적 필수품뿐 아니라 양질의 주거와 음식, 교통, 의료, 통신, 여가 등에 쓰이는 비용까지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뜻한다. 최저임금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최저임금의 보완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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