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의 오명균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아하하하.” “왜 웃으세요?” “자꾸 검찰 직원이라고 전화가 와서요. 또 제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어요? 아하하하.” “아니, 그만 웃고, 끊을게요, 끊어.”
어설픈 사기 수작에 상대 여성이 계속 키득거리자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범도 결국 웃어버리고 만다. 지난해 4월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던 일명 ‘오명균 수사관’ 사칭 동영상의 주인공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20여명에게서 3억원 상당을 뜯어낸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기 등)로 유모(28)씨와 총책 조모(43)씨 등 14명을 구속하고 인출ㆍ송금을 담당한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동영상에서 검찰수사관을 자칭한 유씨는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중국동포 지인의 제안에 2014년 12월 중국행을 택했다. 총책 조씨가 그 해 5월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에 차린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여기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팀’ 수사관을 사칭하며 돈을 뜯어냈다. 매달 150만원가량의 수입을 올렸다. 검찰수사관에서 2차 작업팀인 ‘검사’로 승진도 했다.
하지만 한탕의 꿈은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국내로 들어온 조씨가 검거됐다는 소식이 현지에 전해지면서 유씨도 불안한 마음에 귀국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정보기관을 통해 유씨 등 조직원들의 신원과 소재를 파악한 경찰은 공항에서 이들을 검거한 후 추가 진술을 확보해 25명을 줄줄이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는 ‘그만 웃고 끊자’라고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직접 봤다고 진술하기도 했다”며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이 더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중국 공안과 공조수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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