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62) 경남도지사가 21일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뒤 6개월여 만에 법정에 나와 “검찰이 불법 증거수집을 했다”며 무죄 주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그의 측근인 대학총장 엄모(60)씨는 홍 지사에게 돈을 전달한 것으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회유하려 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현용선) 심리로 이날 열린 첫 공판에서 홍 지사는 “(수사팀의) 김모 부장검사가 지난해 4월 13일 엄씨와 윤씨가 통화한 것과 같은 시간대에 호텔에서 두 시간 동안 윤씨와 같이 있었다”며 “진술 신빙성이 없을 것 같으니까 새로운 증거수집을 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씨가 윤씨에게 전화해 ‘홍 지사의 나모 전 보좌관이 돈을 챙긴 것으로 해주면 안되겠냐’고 회유한 통화 녹음파일이 불법증거라는 주장이다. 오랜 공판준비기일로 반박할 시간을 벌었던 홍 지사가 꺼낸 회심의 카드였다. 그러면서 “이런 불법감청이 법정형으로 (자신의 혐의인) 정치자금법 위반보다 몇 배 무거울 것”이라며 “새 검찰총장이 수사관행도 좀 바꾸고 자체 감찰을 해야 한다”고 훈계까지 했다.
검찰은 이에 헛웃음을 보이며 “사실을 호도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검사는 “수사팀이 생기기 전에 윤씨 관련 보도가 나와서 김 부장검사가 이 사건을 본격 수사할지 판단하려고 윤씨를 만난 것이며, 윤씨가 엄씨와 통화한 사실도 몰랐다”고 반박했다. 엄씨는 특별수사팀 출범 하루 전인 지난해 4월 11일과 13일 두 차례 윤씨에게 전화를 걸어 회유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날 엄씨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홍 지사를 오래 모신 참모로서 그에게 피해가 갈까봐 앞장 서서 막았다”고 윤씨에게 전화한 사실을 인정했다. 홍 지사가 혐의를 벗을 수 있도록 윤씨를 회유하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도 시인했다.
홍 지사는 앞서 법정에 들어서기 전 “정치를 오래하니 이런 참소(讒訴)도 당하나 싶다. 돈을 받은 적도 없고 성완종도 잘 모른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돈을 받은 적이 있냐’는 취재진의 물음에도 “그건 아주 불쾌한 질문이다.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홍 지사는 2011년 6월 중하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집무실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지시를 받은 윤씨를 만나 쇼핑백에 든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윤주영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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