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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늪에 빠진 일본에 부는 행복관리 열풍

입력
2016.01.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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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규모 불구 행복도 6점 턱걸이

국민들 ‘행복 후진국’ 자조 많아

장시간 노동 등 낮은 삶의 질 탓

日정부, 지자체 “높일 방안 찾자”

스트레스 검사에 의무화 등 팔 걷어

높은 사회적 신뢰가 그나마 버팀목

일본 도쿄 시내에 위치한 간다 묘진 신사에 직장인들이 한 해 행운을 빌기 위해 가득 들어차 있다. 경제 수준에 비해 행복도가 떨어지는 대표적 ‘행복 후진국’ 일본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주민 행복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 도쿄 시내에 위치한 간다 묘진 신사에 직장인들이 한 해 행운을 빌기 위해 가득 들어차 있다. 경제 수준에 비해 행복도가 떨어지는 대표적 ‘행복 후진국’ 일본은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주민 행복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에선 ‘행복 후진국’이란 자조적 물음이 수년 전부터 계속돼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주민행복도 조사에 한창이다.

“10점 만점에 당신의 행복감은 몇 점인가요?”라는 질문이 거리에서나 온라인을 통해 빈번하게 들린다. 점수는 매년 평균 6점 중ㆍ후반으로 반복되고 있다.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문화가 일본인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여행사이트 익스피디아 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휴가를 얻을 경우 죄책감을 갖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26개국 중 최고다. 일본 정부는 행복관리를 위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매년 스트레스 검사를 하도록 지난해 12월 의무화했다.

한국일보 행복도 국제비교 조사에서도 나와 있듯이 일본 젊은층의 생활상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경제 사정에 대한 불만이 크다. 도호쿠(東北)출신인 후지타 히로시(藤田浩志ㆍ32)는 음악 밴드로는 벌이가 시원치 않아 도쿄 한 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그는 행복하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매달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20만엔도 안 된다. 여자친구도 정사원으로 취직하고 싶지만 어려워 서로 결혼을 미루고 있다.”

콜센터 파견직원인 아리무라 시노(有村紫乃ㆍ29ㆍ여)도 “사람들의 전화 화풀이로 스트레스가 심하다”면서 돈 얘기부터 토로했다. 그는 “빨리 결혼하고 싶지만 남편감이 없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안정된 직장에서 연수입 600만엔 이상 되는 남자여야 한다”고 했다.

일본 내각부 경제사회종합연구소 구와하라 스스무(桑原進ㆍ50) 총무부장은 “사회로 나온 지 얼마 안 된 20대 남성의 행복도가 비정규직 고용 같은 부분이 반영되는지 유독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일본 정부는 그 세대가 미래 불안을 느끼는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일본은 비정규직 비율이 40%를 넘어섰다.

구와하라 총무부장은 일본의 행복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데 대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소득 이외 부분이 그다지 좋지 않아 그렇다”며 “OECD 장시간 노동 항목에서 32위로 굉장히 나쁘지만 그 정도로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2012년 행복도 조사를 진행했다. 첫해 1만명이 대상이었고 2013년엔 4,950세대를 조사했다. 보통 수준을 넘는 6점대가 굳어지자 2014년 조사를 끝냈다. 문화인류학자인 후나비키 다케오(船曳建夫)는 “남과 비교해 중간보다 약간 위라고 답하는 것뿐”이라며 “일본인다운 수치”라고 말했다.

일본의 행복지수를 떠받치는 중요 요인으로 꼽히는 게 ‘사회적 신뢰’다. 기자가 하네다 공항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을 공항 측은 수일 동안 출입국수속 구역을 점검해 찾아줬다. 도쿄디즈니랜드에서 없어진 어린이의 모자는 출구 옆 분실물센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일본 사회다. 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도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연대감을 결속시켰는데 이런 요소가 행복도를 높이는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일본 정부 분석이다.

광역 지자체에선 행복도 조사가 여전히 유행이다. 경제관료 출신인 오가와 히로시(小川洋) 후쿠오카현 지사는 ‘현민 행복도 일본 제일’을 공약으로 내세워 2011년 취임했다. 조사 비용만 매년 300만엔이 들지만 오가와 지사는 “현민의 기대에 부응하다 보면 행복 수준이 계속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부탄에서 제시한 ‘국민총행복지수(GNH)’란 국가목표가 일본인에게 충격을 줬다고 설명한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일본에서 ‘경제성장’을 대신한 구호로 일제히 ‘행복 콘셉트’가 쏟아진 것이다. 행복도를 연구하는 요코하마시립대 시라이시 사유리(白石小百合) 교수는 “행복지수 조사는 행복도가 특히 낮은 특성을 발견하고 불행의 싹을 잘라내는 계기가 된다”고 평가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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