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6.9%에 의심의 시선
“교역량 보면 기껏해야 4%대”
‘닥터 둠’ 파버 가세로 논란 재연
보조지표 추정치와 맞지 않고 GDP 집계 20일도 안 돼 산출 의문
당국 잦은 시장 개입도 불신 자초… 조작 확증 없지만 거짓 땐 충격파
19일 중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발표되기 한 시간 전, 로이터의 아시아 지역 에디터인 피터 탈 라센은 개인 트위터에 “성장률은 얼마일까요?”라며 객관식 문제를 냈다. 그가 제시한 보기는 1번도 6.9%, 2번도 6.9%였다. 다른 보기는 없었다. 중국 정부가 목표치를 ‘7% 내외’로 잡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기에 숫자를 맞출 것이란 사실을 우회적으로 조롱한 것이었다. 잠시 후 오전 11시(한국시간) 발표된 성장률은 정말 6.9%였다.
중국이 발표한 지난해 성장률을 두고 이 수치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GDP가 발표되는 분기(3개월)마다 재연되는 논란인데, 이번에는 ‘닥터 둠’으로 불리는 대표적 비관론자 마크 파버가 이 논쟁에 가세하면서 ‘통계 진실성’ 논란이 더 커질 전망이다. 중국 당국의 불투명한 정책 운영이나 시장에 대한 잦은 개입이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중국을 못 믿겠다는 전문가들
파버는 19일(현지시간) 미국 CNBC방송에 “기껏해야 성장률은 4% 근처거나 그보다 낮을 것”이라며, 그 근거로 “한국 대만 등과의 수출입을 보면 중국 경제가 확실히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중국의 수출은 전년 동월에 비해 1.4% 감소했고, 수입은 7.6% 급감했다. 시장 예상보다 교역량이 확 떨어졌는데, GDP가 정부 예상치를 유지한 건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다른 지표를 통해 중국 GDP를 추정했을 때, 도저히 7% 내외의 성장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이와 관련, 리커창 중국 총리는 부총리 시절인 2007년 “GDP는 조작이 가능해 믿을 수 없다”며 ▦전력소모량 ▦철도수송량 ▦은행대출 규모 등을 통해 경제규모를 측정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측정하는 통계를 ‘리커창 지수’라 부른다. 미국 영국 등 전문가들이 이런 지표들을 활용해 간접 측정하거나 자체 집계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중국 성장률은 대략 3~4%에 그친다. 철도 화물 수송량이 전년보다 15.6% 급감했다고 발표하면서, 산업생산이 6%대 성장했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중국 철강생산량(-2.3%)은 1981년 이후 35년만에 처음, 발전량(-0.2%)은 1968년 이후 처음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GDP 집계가 너무 빨리 나오는 것도 논란거리다. 13억 인구의 경제활동을 20일도 안 돼 산출해 낸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의 GDP 발표시점은 속보치의 경우 분기 종료 후 28일 이내, 잠정치는 70일 이내이다.
만에 하나 왜곡이라면
중국 통계 신뢰성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아직까지 조작되었다는 확증은 없다. 못 믿겠다는 이들의 근거도 정황 증거에 불과하다. 또한 리커창 지수처럼 제조업 관련 통계로만 GDP를 추정하면 과거 중국이 제조업 일변도로 성장할 때는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서비스업이 급성장하는 때에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일당독재체제라는 중국의 통치 형태와 잦은 시장 개입으로 볼 때, 중국의 성장률 숫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정치적 함의를 지니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BBC는 “GDP는 부가가치의 총합의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자존심이자 정신적 열망으로서의 의미도 지닌다”고 분석했다. 홍콩 투자분석가 피터 처치우스는 지금이 중국 증시가 급락한 직후라는 점을 지적하며 “특히 지금 시점에 이것(성장률)은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이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라도 중국이 내놓는 수치가 왜곡된 것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 내부적으로는 고용이나 소득 쪽에서 큰 괴리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나 임금은 경제성장률과 대개 비례하게 되는데, 실제 성장률이 낮다면 통계상 성장률로 기대하는 것보다 고용이나 소득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얘기다.
BBC는 세계경제 전체적으로도 중국 GDP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분석한다. 중국에 자원을 수출하거나 소비재를 파는 나라라면 응당 GDP같은 통계를 보고 투자 규모나 시기를 결정하게 될 것인데, 이게 잘못됐다면 수요 예측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종=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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