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까지 미 국무부장관 눈도장, 한미일 차관협의는 미일에 휘둘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을 향해 구애하던 정부가 이제는 미국의 입만 바라보며 속을 태우고 있다. 강력한 대북제재를 관철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나 갈수록 주변국에 매달리는 것으로 비치면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20일 토니 블링큰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것이 단적인 예다. 국방부와 국무부로 부처업무가 다르고 장관과 차관이어서 격이 다른데도 우리 측이 먼저 요청해 회동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김규현 외교안보수석과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에 이어 이날 한 장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까지 우리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인사들은 블링큰 장관이 중국으로 떠나기 앞서 모두 눈도장을 찍었다.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와 외교부는 그렇다 쳐도 국방수장인 한 장관까지 굳이 블링큰 부장관을 만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핵실험 이후 중국과의 국방 핫라인 불통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한미일 공조에서도 끌려 다니는 처지다.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협의의 경우 미국이 4차 핵실험의 위중함을 감안해 회의 장소를 서울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이 당초 예정대로 도쿄를 고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의 제안에 동의했다가 일본이 강하게 나오자 군말 없이 승낙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차관협의에서 일본 측이 2012년 밀실추진으로 무산된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다시 꺼내 들면서 우리 측은 파장을 진화하는데 부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정부가 대북제재 국면에서 수세에 몰린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발언권이 없는 탓도 크다. 한국은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당시 매월 번갈아 맡는 안보리 의장국이자 한반도 이슈 당사국으로서 논의를 주도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안보리 15개 이사국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 ‘장외선수’인 처지다. 안보리 논의에서는 옵서버로 발언만 할 수 있다. 안보리에 회람 중인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도 알려진 것과 달리 미일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내달에는 북한에 우호적인 베네수엘라가 안보리 의장국을 맡게 돼 정부는 어떻게든 이달 안에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려 속도를 내고 있지만 미중 간 파워게임 양상마저 전개돼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김광수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