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이 완성되기까지는 300년이 걸렸다. 일본의 산업화는 100년이 걸렸다.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 유럽의 주요 국가와 러시아, 일본 등지로 확산되는데도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 긴 시간에 걸친 변화였기에 200여년을 늦게 시작한 우리가 불과 30년 만에 따라잡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 때 우리가 외친 구호가 ‘세계의 100년은 우리의 10년’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 년 남짓이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로봇 같은 미래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은 그보다도 훨씬 짧고 빠르게 시장에서의 성패를 결정 짓게 될 것이다. 상상치 못한 변화를 따라잡으려면 우리가 산업화 시대에 냈던 열 배의 속도에 서너 배를 곱하지 않고는 승산이 없어 보인다.
ICT 혁명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똑같은 기술을 만들어냈다고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데 있다. 플랫폼을 선점한 쪽이 시장을 읽어낼 빅 데이터를 독식하고 이를 활용해 창의적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 내면서 기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구조로 시장이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술개발 하나에만 우리의 미래를 의존할 수 있었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태평스러운 것 같다. 시장진입을 가로막는 벽 앞에서 우리 기업들이 신음과 걱정을 쏟아내건만 사고의 틀과 프로세스, 법제도 등이 구체제에 머물러 있어 대한민국의 각 부문은 누구와도 협업하지 않으며, 무엇도 결정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무풍지대처럼 여유롭다. 해묵은 갈등과 담론의 쳇바퀴에 발목이 잡혀 무한반복의 ‘베끼기'과 '눈치보기'만 있을 뿐 미래를 향한 진지한 성찰은 더디다. 우리의 ‘주전공’이자 ‘주특기’인 ICT 시대가 도래했건만 현실은 안타깝고 미래는 우려스럽기만 하다.
과연 우리가 후진국에서 개도국으로, 개도국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도달하기까지 힘들여 세운 위상을 지킬 수 있을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아날로그 시대의 대립과 갈등 프레임에 갇혀 미래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은 실로 답답하기만 하다. 그것이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라면 앞으로 삼백년의 미래와 맞바꾸는 참으로 값비싼 대가이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흔한 말로 시대가 변했다. 변해도 엄청 변했다. 국가, 국민, 그리고 미래를 위해 이제 과거를 현명하게 뛰어넘는 초월적 리더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날로그 시대의 논쟁을 넘어 국가와 국민을 살리는 광속의 ICT 리더십이 그 해답이다. 합의가 중요하지만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 현실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못 분명하다.
기술을 따라잡으면 경제력도 따라잡을 수 있었던 하드웨어 경제시절의 여유로움으로 ICT 기반경제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앞선 ICT 인프라를 기반으로 창조경제의 기치를 누구보다 먼저 치켜든 우리가 ICT를 활용한 혁신과 창의의 경쟁력 확보에 뒤진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있겠는가. 더욱이 그로 인해 세계경제와 우리경제 사이에 따라잡을 수 없는 ‘영원한 격차’가 생긴다면 그 아픈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독일의 제조혁신전략 ‘인더스트리 4.0’의 롤 모델이 바로 우리의 ICT 성장정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마치 미래를 준비하는 선진국의 정책인양 역수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시대에 통했다는 이유로 ‘결정과 책임’은 미룬 채 고민 없이 모방하는 ‘정책 답습’은 더 이상은 안 된다. 독일에서는 산업계를 중심으로 ‘인더스트리 4.0 플랫폼’이 착착 운영되고 있다. 독일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전략만 수립한 게 아니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가 ICT 강국이라는 한국의 실행과 결실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관념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어려운 경제현장을 면밀히 살펴 미래의 방책을 찾아나가는 ‘실사구책(實査求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혜안과 용기가 필요하다.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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