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7분 투자로 읽는 ‘세계 석학이 본 한국의 행복’
한국인의 행복 수준
조사대상 158개국 중 47위
경제수준 비슷한 나라와 비교 때
사회적 지원, 부패 부문 낮은 점수
한국 과도한 사교육비도 문제
높은 점수 요구받을수록 불행해져
시험보다 인간 본성 개발에 역점
다른 나라들의 변화 거울 삼아야
저성장 시대에 한국인은 어떻게 하면 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가 이 물음을 행복학의 세계적 대가 존 F. 헬리웰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명예교수에게 던졌다. 헬리웰 교수는 행복경제학의 개척자이자 유엔이 발표한 ‘세계 행복보고서’ 대표 저자다.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행복 보고서(‘한국에서 주관적 행복감의 측정과 해석’)에도 참여했다. (▶ 헬리웰 교수가 더 궁금하면 이곳을 누르세요 http://goo.gl/sUHdGV)
“서로 어울려 소통(Connection)하고, 신뢰(Trust)를 쌓으시라.”
올해 여든인 행복학 대가가 한국인에게 조언하는 ‘행복해지는 길’이다. 헬리웰 교수는 “그렇게 하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기회도 얻어지고, 다른 사람의 행복감은 물론 자신의 행복도 함께 증진시키는 ‘윈-윈’ 상황이 된다”며 “그게 행복한 사회가 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유엔의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강조점을 두는 행복 요인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회적 지원 부문이며 한국인은 세계 평균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평가돼 있다. 우리가 전통적 가치로서 중시해왔던 상부상조(相扶相助)정신이 고도산업화 과정에서 크게 퇴색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캐나다 밴쿠버 현지 취재(지난해 12월14일)와 두 차례 이메일 보충질문을 토대로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영국 신경제재단(NEF) 등이 앞다퉈 행복 증진을 핵심으로 삼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은 뭔가.
“행복지수는 경제적 혹은 사회적 개별 지표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상위 개념인 ‘행복’ 혹은 ‘삶의 질’을 측정하고 궁극적으로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이런 평가는 주관적 방법이기는 하나 사람들이 체감하는 행복에 미치는 모든 요인을 고려한다. 그래서 경제ㆍ사회적 일부분에만 머물렀던 전통적 지수보다 더 정확하고 광범위하게 삶의 전반을 평가할 수 있게 한다.”
-저자로 참여한 ‘2015 세계 행복보고서’의 6가지 요소 가운데 행복 결정의 가장 큰 요인은 뭔가.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이다. 다년간의 조사로 보면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가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가별 행복순위는 가상의 ‘최악 행복국가’와의 요소 별 격차를 분석해 정해졌다. 세계 평균과 ‘최악국가’의 행복도 격차 가운데 30%는 ‘사회적 지원’이 결정했고, 26%는 1인당 GDP, 19%는 건강 기대수명이 차지했다.” (유엔 세계행복지수는 ▦건강기대수명 ▦1인당 GDP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 ▦관대함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자유 ▦기업ㆍ정부의 부패수준 등 6가지 요인을 평가해 종합점수를 매긴다.)
-행복은 개인적 기질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의 행복 수준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가.
“세계기구의 개별 연구보고서마다 행복지수가 조금씩 다른 건 사실이다. 해당 연구를 후원한 기구나 재단의 특별한 주문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영국 레가툼(Legatum) 연구원의 ‘번영지수’는 GDP 변수를 중시하고, 영국 신경제연구소의 ‘지구행복지수’(Happy Planet Index)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을 강조하는 식이다. 이럴 경우 국가마다 다른 순위가 나올 수 있다. 유엔이 내놓은 행복지수와 차이가 난다. 그러나 행복지수에 대한 많은 보고서들이 내놓은 국가 순위는 매우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표본이 커질수록 결과가 더 일치하게 된다.”
-한국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행복이 더 위협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행복과 경제발전은 경제ㆍ사회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요소들이다. 행복 수준이 높아지면 거꾸로 경제 활력도 좋아진다. 직장에서 동료를 신뢰하고,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면서도 더 혁신적이고 생산적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직장의 행복 수준을 높이려는 시도는 그 자체가 목적으로 추구돼야 한다. 생산성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면 핵심을 빠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과 경제활력의 피드백 관계만 놓고 보면 행복 증진이 경제적 성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행복수준을 높이는 차원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종교를 가질 것을 권유하는가.
“종교를 얘기할 입장이 아니지만 행복관련 연구자로서 이런 점을 지적하고 싶다. 미국에서 교회 신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행복과 직접 관련이 깊은 것은 동료 신자 가운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여부였다. 행복 수준을 높이는 요인은 종교를 믿는 비율보다 사회적 신뢰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북유럽 국가의 경우 유신론자 비율은 감소 추세지만 정부ㆍ사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다. 북유럽 국가는 신의 존재를 믿는 비율이 20% 미만이지만, 사회적 신뢰 수준은 90%로 매우 높다. 반면 거꾸로 전체의 90% 이상이 신의 존재를 믿는 지구촌 다른 어느 곳의 신뢰수준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구적 차원에서 한국인의 행복수준을 평가해 달라.
“한국은 조사 대상 158개국 중 47위였다. 일본(46위)보다 한 단계 낮지만 두 나라 사이 격차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 동북아에서 대만(38위)이 조금 더 상위권이었으나 이것도 큰 차이는 아니다. 6개 평가 항목 가운데 한국은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사회적 지원’ ‘부패’ 부문에서 점수가 낮게 나온다.”
-한국 경제가 선진국 수준에 올라섰지만 국민의 행복감은 여전히 낮다.
“소득수준이 일정 단계에 오르면 1인당 GDP가 조금 늘어나도 행복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GDP 10% 증가에 따른 행복지수 상승폭은 10점 척도 기준으로 0.03포인트에 불과하다. 이는 GDP가 10% 증가할 때 한국인의 행복수준이 0.5%가량 늘어난다는 걸 뜻한다.”
-행복 수준을 높이기 위해 ‘경제발전’과 ‘사회적 지원’ 가운데 어느 쪽에 정책적 자원을 더 투입하는 게 좋겠는가.
“경제발전과 사회적 지원이라는 요소를 왜 별개로 생각하는가. 둘 사이에 시너지 효과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정책이 성공리에 추진됐으며, 나와 동료 연구자들이 그 사례를 행복경제학 분야의 국제학술지(Journal of Happiness Research)에 게재한 바도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2008년과 2009년 금융위기 당시 한국 정부는 예산과 사회기금을 일자리가 없어진 계층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을 폈다. 사회 구성원이 아픔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정책이 추진됐다. 은행이 기업이나 사람들에게 전통적 기능인 돈만 빌려주는 것을 넘어서 공익을 위한 투자에도 나섰다. (헬리웰 교수가 적시하지는 않았으나 이명박 정부 때 추진된 미소금융이나 일자리 나누기 등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책으로 ‘사회 동반자’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일자리와 소득 나눔이 이뤄졌고 거시경제 지표에도 긍정적으로 반영됐다.”
-당시 한국에서는 정치적 제스처라는 비판도 많았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학자로서 나의 역할과 관심은 그런 정책이 행복에 얼마만큼 좋은 것인지 여부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한국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경제 성적도 좋았고, 국민의 행복감도 높아졌다는 걸 우리 연구에서 확인했다.”
-한국이 국민의 행복수준을 높이기 위해 어느 나라를 본받아야할까.
“스위스, 아이슬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 유럽 4개국이다. 이들은 행복지수를 구성하는 6개 요인에서 모두 상위에 올라 있다. 행복은 어느 한 부문만 잘 한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고루 높은 수치를 지니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공공정책이 사회적 행복을 극대화한 구체적 사례가 있는가.
“싱가포르 교도소 혁신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싱가포르는 199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수감자의 행복수준과 사회 재활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교도행정에 수감자들을 직접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높이는 게 행복을 높이는 공공정책 방향의 핵심이다. 덴마크는 ‘사회 구조’(Social Fabric)가 갖는 소통의 질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정보기술(IT) 발달로 출현한 SNS가 구성원의 소통과 연결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신기술을 이용한 사회 응집력 강화방안이 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사회적 신뢰, 타인에 대한 믿음을 세우는 것이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행복 사회에서는 구성원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그런 사회적 자산이 성과를 내면 타인에 대한 신뢰가 더 강화되고 행복을 촉진하는 행동으로 계속 이어진다. 어떤 형태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당신이 참여한 KDI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과도한 사교육비가 행복 수준을 떨어뜨리는 대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사교육비 함정의 악영향을 인식하고 이를 물리쳐야 한다. 희소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이 높은 것은 몇 안 되는 명문 대학의 좋은 자리를 놓고 학생들이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높은 성적과 점수를 요구 받으면 불행해진다. 최근 여학생 성적이 남학생을 능가하면서, 여학생의 행복 수준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더 높은 점수를 받도록 경쟁시키는 대신 일정 수준 이상만 되면 과정을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 다양한 방법으로 질 높은 고등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한 사례로 브리티시 컬럼비아대를 비롯해 세계 유명 대학들은 과거처럼 소수의 학부생만을 뽑아 교육하는 시스템에서 탈피하고 있다. 대신 다양한 통로로 지역 사회와 다양한 연령대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변하려면 학생 성적을 매기는 방법, 학교가 신입생을 충원하는 방법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많은 나라의 학교 교육이 평가위주 시험과 성적에 대한 중요성을 낮춰, 결과적으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시험이나 성적보다는 인간본성 개발에 주의를 기울인다. 교육은 어느 대학에 가느냐보다 더 큰 사회적 관점에서 인간 능력의 성취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논쟁이 있었다. 예컨대 무상 급식과 선별 급식 중에 어떤 게 더 선호되어야 하나.
“내 입장은 중립이다. 그 질문에는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다. 그렇게 중요한 이슈라면 전면 실시에 앞서 도시나 마을을 정해서 두 정책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와 장단점을 확인할 수 있는 정책 실험을 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스웨덴 연구에 따르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따지지 않는다면) 사회적 신뢰를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보편적 프로그램이 훨씬 좋다. 캐나다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침을 못 먹는 20만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대기업은 물론이고 지역사회 개인이 기부와 자원봉사자로 나서 식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했다.”
-행복 수준을 높이려는 정책이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로 흐르지 않겠는가.
“행복추구 정책과 포퓰리즘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 포퓰리즘은 (한 무리의)사람들을 단결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나쁜 감정에 호소한다. 하지만 행복추구 정책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통해 이뤄진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행복추구 정책을 ‘빅 브라더’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국가가 나서 정해놓은 행복 정책에 맞춰 일부 개인들은 싫어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행복추구 정책을 반대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회를 분열하는 정책으로는 행복이 높아질 수 없다. 훌륭한 정부는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분열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밴쿠버(캐나다)=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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