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재취업 담당자에게 항의한다. 안내대로 재취업에 필요한 기술 교육을 몇 개월 동안 받았는데 돌아오는 답은 경력 부족으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경력을 지닌 사람이 어디 있냐는 남자의 반복된 항의성 질문에 재취업 담당자는 현실이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응답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서 시장이 움직인다는 자본주의의 근본 원리가 현실에서는 복잡하고 잔인하게 작동함을 영화는 그렇게 암시하며 시작한다.
주인공 티에리(뱅상 랭동)는 공작기계 회사에서 실직을 했고 다시 직장을 잡기 위해 악전고투 중이다. 짬짬이 만나는 옛 동료들은 회사의 부당한 구조조정으로 해고가 됐다며 소송을 준비 중인데 티에리는 시큰둥하다. 법정 다툼보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라는 걸 그는 안다.
실업자들 누구나 애타게 새 직장을 찾아 나서겠으나 티에리의 마음은 더 급하다. 장애를 지닌 아들이 제대로 성장하고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덜 받게 하려면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티에리는 2년 동안의 힘겨운 구직 활동을 통해 대형 마트의 경비직을 얻는다. 경제적 안정을 되찾았으나 티에리는 곧 회의에 빠져든다.
티에리는 폐쇄회로(CC)TV에 찍힌 고객이나 동료들의 부정한 행위를 적발하고 추궁하는 일을 한다. 어느 노인이 15유로(2만원 가량) 상당의 고기를 몰래 훔친 일로 끌려왔는데 티에리는 예전 재취업 담당자의 입장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돈을 내면 아무 일 없습니다.” “정말 돈이 없어요.” “가족도 친구도 없습니까?” “없어요. 제가 돈이 있으면 이러겠습니까?” “어쩔 수 없군요.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더 견디기 힘든 일도 발생한다. 고객의 쿠폰을 빼돌리거나 고객 포인트를 자신의 카드에 적립한 동료 직원들을 추궁하게 된다(공교롭게도 장소는 얼마 전 장기 근속자의 정년퇴직을 축하한 곳이다). 부당 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티에리는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들을 억압해야 하는 현실에 한숨을 쉰다.
영화는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티에리가 지체장애 아들을 목욕시키는 장면을 비춘다. 잔뜩 웅크린 아들은 무정한 자본주의사회에 내동댕이쳐진 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듯하다. 든든한 배경이 없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약자의 서러움을 은유하기도 한다.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는 ‘시장의 법칙’(La Loi du marche)이다. 중립적인 제목인 듯하나 인간의 정리와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가혹한 자본주의 법칙을 통박한다. 영어제목 ‘인간의 척도’(The Measure of Man)도 흥미롭다. 개인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시스템의 완고함을 나타낸다.
주연 뱅상 랭동은 이 영화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받았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재취업을 준비하고 냉혹한 현실에 번민하는 티에리의 모습은 현대사회의 소시민 가장을 대변한다. 감독 스테판 브리제. 28일 개봉, 12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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