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가 18일 파리 근교 슈와셀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91세. 투르니에가 아들처럼 아끼던 대자(代子) 로랑 펠리퀼리는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며 “지난 몇 달간 건강이 급격히 악화했고고령이어서 더는 (병마와)싸우기를 그가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르니에는 마그리트 유르스나르, 파트릭 모디아노, 르 클레지오와 더불어 현대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소르본대와 독일 튀빙겐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43세인 1967년 첫 작품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발표해 아카데미 프랑세스 소설 대상을 받았다.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재해석한 이 소설은 원작의 식민지 세계관을 비틀어 문명과 야만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1970년에는 어린이들을 나치 정권으로 끌어들이는 남자를 소재로 한 두 번째 소설 ‘마왕’으로 유럽권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귄터 그라스, 아서 밀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과 함께 남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단편소설 프로젝트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Telling Tales)에 참여하는 등 비교적 최근까지도 꾸준히 활동했다.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돼 온 그는 평생 미혼으로 파리 근교의 사제관에서 혼자 살았다.
동화적이면서도 철학적인 투르니에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마니아 층을 끌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황금 구슬’ ‘외면일기’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등 여러 소설과 에세이가 번역ㆍ출간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투르니에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위대한 작가였다”며 경의를 표했다.
투르니에의 여러 작품을 국내 번역 소개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가 “사르트르와 독일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며 “그래서 작품세계가 매우 철학적이고 시간과 삶과 공간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소설 속에 녹여썼다”고 말했다. “그런데 철학으로 풀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니까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하더라”며 “어린 아이까지 이해할 수 있게 써보겠다고 하며 글을 썼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로빈슨 크루소’는 사실 무인도에 영국 세계관을 전파하는 식민주의ㆍ계몽소설”이라며 “투르니에는 흑인 노예였던 프라이데이 즉 방드르디를 내세워 반대를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미있는 것은 철학적인데도 투르니에 책이 많이 팔렸다는 것”이라며 “‘방르드디, 태평양의 끝’은 어린이 소설로도 개작돼 많이 팔렸는데 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투르니에가 자기 아버지가 68세에 죽었다며 자기도 그때 죽을 거라고 묘비명도 써 놓았어요. 그게 ‘짧은 글 긴 침묵’에도 나오죠. 그래서 제가 투르니에를 만날 때 왜 안 죽었느냐고 농담으로 물었죠. 그랬더니 그러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죽음을 놓쳐버렸으니’”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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