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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야근 마치고 승진 공부.. “뒤처지면 끝” 강박에 심신은 너덜너덜

입력
2016.0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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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성장기 이끈 원동력 불구

지금은 우울감과 스트레스 주범으로

한국인 82% “타인과 경쟁 심하다”

일본, 덴마크보다 2, 3배 비율 높아

선진국 경쟁 속 협력 강조와 차이

고학력자들 더 심리적 압박

정서적 고립과 나홀로족 점차 확산

공무원 학원등 취업, 입시 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공무원 학원등 취업, 입시 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44)씨는 지난 3개월 간 4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 지난해 인사 규정이 바뀌면서 직무 관련 자격검정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승진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다른 직군으로 발령을 낼 수 있다는 회사측 선전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격검정 시험에서 이미 두 차례 낙방한 김씨는 새벽 1, 2시까지 야근한 날에도 퇴근 후 꼭 2시간 이상 공부했다. 김씨는 “가까스로 세 번째 시험에서 합격했지만 매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며 “업무 역량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무한경쟁의 현실에 주눅이 든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경쟁이었다. 치열한 경쟁이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고, 선진국과의 격차도 줄었다. 하지만 고도성장이 끝난 지금 이 경쟁의식은 우리 국민에게 스트레스와 우울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일보의 행복 국제비교조사에서 이 나라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한국인이 치열한 경쟁(19.5%)을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경쟁에 짓눌린 한국의 행복은 타인과의 경쟁수준을 묻는 질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학교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 국민 82%가 ‘심하다’고 답했다. 일본(26.6%), 덴마크(45.0%), 브라질(67,8%)과 비교해 압도적인 수치다. 경쟁 수준에 대한 인식은 행복감과 그대로 연결된다. ‘행복하지 않다’고 답한 이들 중 87.2%가 경쟁이 심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은 “선진국이 경쟁과 협력의 합성어인 소위 ‘코피티션’(CoPetitionㆍ경쟁을 통해 상대를 패배시키기보다 경우에 따라 상호협력을 통해 보다 나은 성공을 거두는 것)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초중고 교육에서부터 늘 개별적 경쟁만 강조한다”며 “많은 이들이 정서적 고립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나홀로족’처럼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일에 관심조차 없는 계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직업별로는 학생이 경쟁 수준을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응답자의 88.7%가 타인과의 경쟁 수준이 ‘심하다’고 답했다. 화이트칼라(87.1%)와 자영업자(87.1%)가 뒤를 이었다.

학력별로는 고학력자들이 경쟁 수준을 심하게 느끼는 경향이 강했다. 누구나 선망하지만 한정된 ‘과실’을 따기 위한 다툼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응답자의 88.3%가 경쟁 수준이 심하다고 답한 반면 고졸 응답자들은 77.8%가, 중졸 이하 응답자들은 58.1%가 같은 응답을 했다. 김 실장은 “무리하게 상급학교 진학을 고집하는 대신 일찌감치 좋아하는 직업을 찾아 일에 몰두한 이들은 경쟁을 스트레스로 여기기보다 성취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는 사교육 등이 한국 사회 특유의 행복감 결정 요인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4년 발간한 ‘한국에서 행복 측정과 해석’보고서에 따르면 극심한 생존경쟁(rat race)은 한국인의 행복을 좌우하는 조건 중 하나다. KDI 보고서는 급격한 사회 환경 변화와 지역 및 계층 격차, 사교육과 무한경쟁 등을 한국 사회의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요소로 꼽고 있다.

한국인의 경쟁 수준은 강한 비교 성향과도 연관이 있다. ‘본인의 경제 수준이나 본인 혹은 자녀의 성공여부 등을 주변 사람과 어느 정도 비교하는 편인가’라는 질문에 39.2%의 응답자가 ‘비교한다’고 답했다. 덴마크(25.8%), 일본(36.6%)보다 높다. 강한 비교 성향은 행복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1년간 행복하지 않았다고 답한 이들 중 50.9%가 ‘비교한다’고 답했고, 반면 행복하다고 답한 이들은 33.5%만이 ‘비교한다’고 응답했다.

세대로는 40대(46%), 20대(42.5%)가 다른 연령층에 비해 비교 성향이 강했다. 좋은 학교나 직업에 대한 생각이 획일적이고 위계적인 한국사회 특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 박기수(25)씨는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정형화된 교육과정과 생의 주기를 거쳐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며 “정해진 코스를 정답으로 믿고 살다 막상 사회 진출을 앞두고 주체적인 인생 설계를 하려면 막막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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