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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책에서 배운 바 없다” 고종석 트위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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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책에서 배운 바 없다” 고종석 트위터 논란

입력
2016.01.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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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피츠버그홀에서 열린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추모의 밤' 행사에서 한 추모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피츠버그홀에서 열린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추모의 밤' 행사에서 한 추모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명복을 빕니다. 또 한번 경쟁적 추모의 물결이 일겠구나. 나는 (신영복)선생을 20년 동안 가둬놓은 장군들에게 깊은 분노를 느끼고, 그 긴 옥살이를 견뎌낸 선생에게 경외감을 느끼지만, 선생의 책에서 배운 바는 거의 없다.”

또 고종석입니다. 네. 말 그대로, ‘또’ 고종석입니다. 지난 16일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타계 소식이 알려진 뒤 자신의 트위터 계정 ‘JS’에 툭 던지듯 부려놓은 문장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중얼대듯 던져두는 글을 두고 정색하긴 어렵습니다만, 이 문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좋아하든 안 하든, 비판을 얼마나 강하게 하든 간에 꼭 돌아가신 날에 이런 식의 글을 올릴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거기다 ‘경쟁적 추모 물결’이라는 표현까지 써서 신영복 선생께 감화를 받았다는 사람들까지 깎아 내릴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비판이 제기되자 올려둔 반박 글도 매한가집니다. “고인에게 무슨 결례를 했나? 그 긴 감옥생활을 (김지하 선생과 달리)맨 정신으로 버텨내신 데 대해 경의를 표하고, 그러나 그분의 말과 글에서 자양분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뿐이다”라더니 이어 “(공산주의자였다가)전향의 변도 없이 그 분이 쓴 달관자 풍의 글은 내게 어떤 감동도 주지 않았다”라고 써뒀습니다. 차마 안보고 싶었으나 사생활 운운도 해뒀습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페이스북에다 “비판하고 싫어할 자유는 있지만 그런 글을 공개적인 SNS에 올린다는 것은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떨어지는 사람임을 공개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거꾸로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된다”고 꼬집어뒀습니다.

작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알렸던 그이지만 지난해 8월 경향신문에 ‘고종석의 편지’ 코너 집필을 시작한 이래 그다지 좋은 소리는 못 듣고 있는 듯 합니다. 대표적인 게‘해리 포터’로 유명한 영국 여배우 에마 왓슨이 히포쉬(HEFORSHE) 캠페인을 위해 여성친선대사로 행한 유엔본부 연설을 두고 지난해 9월에 쓴 글입니다.

이 정도에 그친다면, 내용보다는 스타일의 문제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너희들과 달리 대중들에게 휩쓸려 가지 않는, 홀로 고고한 자유주의자라는 스타일 말입니다. 그러나 스타일이라고만 하기엔 못내 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2012년 9월 절필 선언 당시 고종석이 한겨레에 쓴 글 가운데 일부를 꺼내봅니다.

“설령 내 책이 꽤 팔려나가고 운 좋게 거기 권위가 곁들여졌다 해서,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그리도 많은 글을 쓴 백낙청이 통일부 중하급 관료나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보좌관만큼이라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미심쩍었다.”

글이란 게, 기대했던 것만큼 힘이 있질 않더라는 겁니다. 글이란 애당초 힘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절필 이유치곤 위험해 보입니다. 다른 말 덧붙일 것 없이, 이쯤에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쓴다는 행위, 문학이라는 행위에 대해 일본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가 ‘이 치열한 무력(無力)을’에 써놓은 대목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무력하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상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사상에 권력이 있다고, 힘이 있다고 여긴 게 됩니다. 자기가 하고 있던 일이 특권적으로 무력하다고 말하는 것. 이는 어딘가 잘못됐습니다. 어쩌면 권력을 가지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사상이나 문학을 했다는 이유가 아닐까요.”

절필 이유가, 그리고 절필 이유를 접고 다시 되돌아 온 이유가 이런 말과 무관하길 바랍니다. 대부분 유명인들을 불러내 말을 거는 그 ‘편지’라는 형식 또한 그러한 이유와는 무관한 것이길 바랍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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