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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동력'엔 실패했지만 '인생'에 실패는 없다

입력
2016.01.1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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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기술 ‘무한동력장치’ 설계의 도전에 나섰던 오필균씨는 현재 철물점을 운영 중이다. 철물점은 그가 어깨너머로, 실패를 거듭하며, 독학을 통해 배운 노하우를 이웃들과 나누는 사랑방이자 공부방이다. 윤주혜 작가 제공
상상의 기술 ‘무한동력장치’ 설계의 도전에 나섰던 오필균씨는 현재 철물점을 운영 중이다. 철물점은 그가 어깨너머로, 실패를 거듭하며, 독학을 통해 배운 노하우를 이웃들과 나누는 사랑방이자 공부방이다. 윤주혜 작가 제공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은 학교에 돌아가면 성실히 공부하겠냐고 의사가 묻자 이렇게 반문한다. “실제로 해보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여기서 제도화된 커리큘럼을 성실하게 이수하는 ‘선생의 공부’와 실제로 해보고 실패하고 나서야 완수되는 ‘독학자의 공부’가 대립한다. 가고자 하는 길에 교과서가 없는 독학자에게 실패는 곧 공부의 깊이를 의미한다. ‘진격의 독학자’에서 소개하는 세 번째 이야기는 한 독학자의 실패담이다.

어깨 너머 배운 기술…가난한 유년기

1955년생 발명가 오필균.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4학년 때 미술시간,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매우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냈더니 담임선생이 누가 대신 해준 것 같다고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학교 대표로 공작실기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행사장에서 내준 시제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버려 바로 떨어졌다.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

아버지는 모터로 도는 방아를 가지고 도정해주던 방아지기였다. 기계 수리를 모두 집에서 했기에 숯불을 피워 직접 베어링을 만드는 장면도 보았다. 학교보다 집에서 일하며 배운 것이 많았다. 도면은 디자인 감각만큼이나 기계에 대한 원리를 알아야 가능한 일. 덕분에 처음 보는 기계도 바로 도면으로 바꿔서 그릴 줄 아는 재능을 얻었다.

동네에 있던 아버지 동업자라는 친구들이 버는 족족 뺏아가 집안은 가난했다.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구두닦이와 배달원을 했다. 열아홉 살에 제주도로 내려가 타일 기술을 배웠다. 한 삼 년 배워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손재주가 좋아 지역에서 인기 있는 기술자가 되었다. 당시 건축 경기가 좋아 돈을 벌 수 있었고, 딱히 더 배우고 싶은 것도 없어 타일 기술만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70년 후반 중동에 타일 기술자로 파견을 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잘사는 것처럼 보였다.

석유도 나지 않는 나라 ‘무한동력’ 찾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는 석유 덕분에 잘 살 수 있는데, 한국인인 나는 무엇으로 잘 살 수 있을까? 자신의 가난과 국가의 가난이 미묘하게 겹쳐 보였다. 괜스레 부러움과 질투가 났다. 어느 날 공사를 위해 어떤 집 보일러실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크고 육중한 보일러와 건물바닥면 사이에 스프링을 설치해, 구동 때 나는 진동소음을 없애 놓았다.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그 아이디어가 재미있어서 숙소로 돌아와 노트에 설계도를 상상해 바로 그려 넣었다.

왜 하고 싶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기발하고 신기한 기계를 보면 그 도면을 그려 상상해보는 일에 충동을 느꼈다. 오필균은 이 과정을 ‘상상화’ 그리는 단계라고 따로 불렀다. 뭔가 만들어보는 기쁨을 통해 이국에서 느낀 서러움을 이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결론이 단순해졌다. 이 나라는 석유가 무한정 나오니 무한동력을 얻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만의 무한동력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한 번 운동하면 거의 무한히 움직일 수 있는 엔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오필균에게 대체에너지나 잠재에너지 같은 개념이 있을 턱이 없었다. 물론 주변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작전이었다.

“커다란 방아를 동네에 세우나 보네”

중동에서 돌아오자 곧바로 무한동력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청계천에 가서 베어링과 기어들을 사 모으고, 어떤 부품은 너무 커서 안 되니까 반으로 잘라 고향 신탄진으로 옮겨서 다시 붙이기도 했다. 중동에서 타일기술자로 돌아오니 그나마 지갑이 두둑해져서 이런 짓을 꾸밀 수 있었다. 이때부터 가족들은 그가 도면만 새로 그리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돈을 길에 버리는 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웃들에게는 정신 나간 사람 소리를 들었다. 부품들 크기가 너무 커서 어떤 것은 20톤이 넘었고, 기중기로 거의 혼자 옮기고 만들었다.

열역학 제1법칙을 무시한 ‘무한동력장치’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으로 비난 받은 적은 없다. 대개는 그가 만드는 기계가 뭔지도 몰랐다. 동네 주민이 말했다. “방아지기 아들이라 커다란 방아를 세우려나 보네. 그런데 저걸 왜 동네 한 복판에 세운담.” 그러고 보니 자신이 만든 무한동력장치가 거대한 물레방아처럼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필균은 자신이 만드는 무한동력장치 가운데에 거대한 태극무늬를 새겨 넣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버지가 지게에 얹어 옮기던 2.5마력 모터방아가 높이 6m 가로 10m가 넘는 오필균의 거대한 방아가 되어 있었다.

1998년 무한동력장치에 들어갈 거대한 휠을 설치하고 잔넬을 붙이는 모습. 오필균씨 제공
1998년 무한동력장치에 들어갈 거대한 휠을 설치하고 잔넬을 붙이는 모습. 오필균씨 제공

‘무한동력장치’가 아니라 ‘무동력엔진’

사람들은 그의 기계를 무한동력장치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의 정확한 표현으로는 ‘무동력엔진’이다. 이 부분에서 대중과 그 사이에 오해가 있다. 그는 모든 힘과 에너지가 근거 없이 증가 소멸할 수 없다는 열역학 제1법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에너지를 투입한 다음 추가 에너지 공급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기관을 설계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중력과 풍력을 최대한 같이 이용하는 반영구적인 운동기관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작업에 필요한 기술을 따로 배우기보다는 실패하는 과정에서 익혔다. 기계를 만드는 동안 용접과 목공, 건축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쌓았다. 무한동력의 상상력은 그에게 전진하도록 만든 동기이지, 그것이 바로 가능하다는 망상이 아니었다. 무한동력장치는 언제나 개발 중인 기계였다.

이후 기계가 서 있는 땅이 공유지라 불가피하게 기계를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독특한 기계를 기념 차원에서 대덕구청에 기증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설치비용 견적만 3,000만원이 나왔다. 결국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포기하고 해체해 버렸다. 기계는 고철 값으로 1,000만원 받았다. 15년 동안 들였던 애정과 노력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았다. 기계를 해체하는 날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오씨의 사연에서 착안한 주호민 작가의 웹툰 '무한동력' 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무한동력’의 한 장면. 마케팅컴퍼니 아침 제공
오씨의 사연에서 착안한 주호민 작가의 웹툰 '무한동력' 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무한동력’의 한 장면. 마케팅컴퍼니 아침 제공

기계 해체돼 사라졌지만 인기만화 모델

자신의 무모한 도전이 방송을 탄 후, 오필균은 의외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수용되기 시작했다. 웹툰 원작으로 인기를 끌고 드라마, 뮤지컬로 제작된 주호민 작가의 ‘무한동력’은 오필균 발명가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다큐멘터리 팀이 와서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실패한 작품으로 ‘무한동력장치’를 취재해 갔다고 한다. 불가능함을 알고도 도전하는 삶에서 작은 희망을 얻는다는 취지다. 이렇게 오필균의 발명품은 88만원 세대에게 정신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오필균은 더 이상 무한동력장치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물 절약 효과뿐 아니라 심미적인 화장실 체험이 가능한 ‘물받이 분리형 화분 양변기’(2010년 특허)를 만들었다. 거대한 기계보다는 이렇게 작지만 꼭 필요한 기능을 이웃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짜 발명가로 알려져 버리는 바람에 가려졌지만, 자동으로 조절되는 전기보일러, 막힌 곳을 뚫기 쉽게 개량한 양변기, 손쉽게 작동하는 간이 엘리베이터 등 생활과 밀접한 기계들 또한 꾸준히 만들어 왔다. 물론 그 시작이 무한동력장치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2010년 특허를 받은 ‘물받이 분리형 화분 양변기’ 도면 중 하나. 윤주혜 작가 제공
2010년 특허를 받은 ‘물받이 분리형 화분 양변기’ 도면 중 하나. 윤주혜 작가 제공
복사열로 덥힌 열을 다시 모아 사용하게 디자인한 전기난로, 오필균씨가 제작했다. 윤주혜 작가 제공
복사열로 덥힌 열을 다시 모아 사용하게 디자인한 전기난로, 오필균씨가 제작했다. 윤주혜 작가 제공

동네 철물점은 경험지(經驗知)의 학교

오필균은 현재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동네이웃들이 뭔가 만들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자문을 구하고, 토론하는 곳이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짧은 동안에도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와 작업의 방식과 그에 필요한 부품과 공구에 대해 자문을 얻어갔다. 원래 철물상을 운영한 이유도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장소로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어깨너머로 배워 왔던 것, 실패하면서 얻었던 여러 잡다한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었다.

'노인들을 위한 자동조절 전기보일러'의 작동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윤주혜 작가 제공
'노인들을 위한 자동조절 전기보일러'의 작동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윤주혜 작가 제공
철물점 공간에 알맞게 디자인해 설치한 간이 수동엘리베이터. 윤주혜 작가 제공
철물점 공간에 알맞게 디자인해 설치한 간이 수동엘리베이터. 윤주혜 작가 제공

훌륭한 학자 하나가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훌륭한 기술자 하나의 가치 또한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사라지는 기술자들의 경험지를 집적할만한 어떤 시스템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역사에서 소외된 민중들의 구술사가 중요한 것처럼, 기술사에서 지역기술자들의 경험지(經驗知) 역시 중요하다. 그들의 지식은 실전에 적용되면서 심미적-기술적 차원에서 가장 알맞은 방법을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알맞음은 실패의 횟수에 비례해 얻어진다.

우리 사회가 도전을 찬양하면서도 실패를 경멸할 때, 창조적으로 실패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오로지 독학이 아닐까? 이러한 실패를 기록하고 지식으로 적극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대와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영진 문학평론가ㆍ수유너머 N 연구원

공동기획: 한국일보, 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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