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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분장실'의 어떤 풍경

입력
2016.01.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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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목화 레퍼토리컴퍼니가 관객들에게 나눠준 팜플렛에 의하면 프롬프터(promter)란 ‘공연 중 배우가 대사를 잊었을 때 관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작은 소리로 대사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이 연극은 그 프롬프터 노릇을 드나들며 연극에의 끈을 놓지 않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다.

극단 목화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 씨가 이 연극 공동체의 수장으로서 젊은 연극인들을 길러내는 장으로 써먹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을 가르친 이원승이 운영하는 피자집 디마떼오의 한 켠을 터서 만든 극장 디마떼오홀이 공연장이니 오 씨가 연극을 해 오며 맺은 이런저런 인연을 한번 정리해 보는 자리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앳되어 보이는 학생 관객들과 인생의 깊이를 알 것만 같은 중년 관객까지 디마떼오 홀에 옹기종기 놓인 좌석에 앉아서 시작을 기다리는 풍경은 어찌 보면 살갑다. 30석이 정원이지만 35명까지 들어가 보는 때가 많다.

좁은 곳이지만 강렬하다. 모든 사람과 사물이 오직 연극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이번에는 오직 연극만을 생각하다 죽은 귀신, 언젠가는 멋지게 무대에 오를 그 날을 생각하며 이 남루한 시간을 버텨 나가는 바로 그 프롬프터들이 주인공이다.안팎으로 연극에 의한, 연극을 위한, 연극의 무대인 것이다. 그런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싫어, 싫어, 싫어!” 수 백 번은 더 외었을 대사,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무대에의 기회…. 이들이 절망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들은 기다린다.

가장 연극적인 어떤 풍경

동일한 작품을 남자 버전과 여자 버전으로 나란히 공연하는, 전례 없던 일이 펼쳐지고 있다. 일본 극작가 스미즈 쿠니오의 ‘분장실‘을 오태석씨가 번안하고 이 극단의 언니와 형뻘 단원 송영광(34), 정지영(28)씨가 연출에 나서 각각 남자와 여자 버전으로 만들었다. 30석 만원의 작은 극장에 때로는 35명까지 들어와 이 작품을 보고 간다. 원로 오태석 선생은 여기서 공식적으로는 번안자. 그러나 매일 극장으로 나와 이것 저것 챙긴다. 바로, 자신의 무대 어법이 제자뻘 연극 후배의 땀으로 거듭 나고 있으니. 화 목 토요일은 여자팀으로, 수 금 일요일은 남자팀으로 상연되는 ‘분장실’이다. 가히 성 대결이라 할만도 하다.

정규 무대에서의 이 같은 시도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 주인공들을 모셨다.. 크게 보아 후대에게 자신의 미학을 전승한다는 오태석 선생의 심모이자 원려다.

이하, 두 사람과의 대화를 정리했다.

왼쪽부터 정지영, 오태석, 송영광씨.
왼쪽부터 정지영, 오태석, 송영광씨.

송영광으로부터 듣다

“후배(정지영)와 나란히 공연 한다는 사실에 솔직히 심리적 부담이 컸다. 극단 10년차에 연출 입뽕인 셈인데, 오 선생님께서 믿고 맡기니 선배로서 그 간 배운 것을 알리고 싶었다.

남자가 할 수 있는 ‘분장실’에 대해 고민했다. 가슴을 만들어 무대에 오르는 등 등 자칫 코미디 프로의 아류가 될까 걱정도 했으나 대본의 힘을 믿고 가기로 결심했다. 감상이 아닌 남성 특유의 에너지와 진정성이 우리 무기다. 그 간 익힌 ‘오태석 연극’의 큰 틀을 견지하며 남자 배우들의 장점을 부각시키려 했다.

급히 준비하느라 집중도가 낮은 이 작품에 아쉬움이 크다, 기회 닿으면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극단 목화 식구가 된 것은 목화 단원으로 있다 극동대 교수가 된 한명구의 소개 덕택이었다. 첫눈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그는 2006년 정식 입단했다.

즉흥성 등 연기력을 오태석 선생에게서 인정 받은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 ‘춘풍의 처’, ‘템페스트’ 등 목화의 주요 레퍼토리에서 주역급을 꿰차게 된다.

오태석 미학을 나름대로 정의해 본다면? “슬퍼도, 기뻐도 어디에나 있는 해학과 웃음의 무대다. 그러나 광주민주화 항쟁의 희생 등 시대적 상황에 맞춰 배우는 오열하기도 했다. 이는 슬픔과 기쁨도 분노와 웃음도 겹으로 동시에 간다는 선생의 세계관 때문이다. 단선적 감정을 벗어나지 않는 서구 뮤지컬과는 지극히 상반되는 접근법이다.”

송 씨는 대학 때 김천연극제에서 ‘우리 읍내’ 연출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연극 '분장실' 공연 장면.
연극 '분장실' 공연 장면.

정지영으로부터 듣다

“목화의 선배들이 워낙 잘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이번에는 여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선에 초점 맞췄다. 서로 대화할 때의 미묘한 감정, 자신감이 결여된 소심함 등 내면의 상처를 (여배우를 통해) 그리려 애썼다.” 2012년 입단 이래 오태석의 작업을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운 대로 그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동시에 그 안에서의 다양한 방식을 나름 모색해 봤다는 것이다. 2011년 서울예대에 입학하면서 오 선생 근처에서 봐 오던 것의 총정리인 셈이다.

“정면 시선, 맨발 연기 등 태석이 일궈 놓은 두 가지만으로도 큰 틀은 장만해 두고 시작한 셈이다. 선생님께서 ‘에둘러 말한다’면, 나는 이번 무대에서 (한발작 더 나가)슬픈 대목을 오히려 밝게 처리했다. 3?4, 4?4조라는 기본 운율에다 적절한 쉼의 호흡 덕에 극단 목화의 무대에서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은 없다.

“선생님께서 즐겨 쓰는 표현 중 ‘해굽성’이란 말을 늘 가슴에 두고 있다. 해를 좇아가는 ‘일향성(日向性)’을 뜻하는 말로, 완성도를 높여 새로운 것을 보이기 위해 보다 새로운 것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간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이번 무대로 그녀는 연출 작업을 경험했으니 이제 본연의 일인 배우로 돌아갈 요량이다. “선생님과 나의 이름이 한 데 걸린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 자기류의 외곬들 의 모임이란 뜻으로 와전되기도 하는 ‘오 사단’이란 호칭마저도 그녀는 좋다고 한다. “‘오태석과 그의 장병들’이란 어감, 든든하고도 진보적이지 않느냐!”

극장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면 돈은 벌겠지만, 그녀는 매일 나와 연습하는 길을 기꺼이택한다. “거기에는 돈으로 환산 못할 어떤 가치가 있다. 보통 연습 시간은 오후 3시~10시인데 이번 분장실 연습을 위해서 우리는 보통 오후 1시에 모였다. 연극 2년 차인 여배우들과 오전 11시에 나와 밤샐 때도, 쉬는 날인 월요일에 나올 때도 있었다.”

그녀 역시 향후 간소한 무대에서 재공연 할 요량이다. “24일 막 내린 뒤 캐릭터를 더 구체적으로 정립해 다시 선보이게 됐으면 한다. 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역발상’이란 개념을 현실화하고 싶다.” 그녀는 “ 이번이 연출로 입뽕작이어서 많이 부담스러웠다”면서도 “기댈 언덕의 위력을 새삼 느꼈다”고 덧붙였다. 클래식이란 것의 참뜻 아닐까?

2월 7일까지 디마떼오홀에서 공연하기로 돼 있었던 이 연극은 24일 막 내린다. 30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목화의 이름으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공연되기 때문이다.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짐작하기 힘든 이 무대에서 정지영은 에어리얼로 분한다. 송영광은 주인공 프로스페로를 연기한다.

연극 ‘분장실’. 목화 레퍼토리컴퍼니가 27명의 단원과 함께 스스로를 확대 재생산해 내는 독특한 방식의 일부이다

ajehiy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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