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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입력
2016.01.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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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참석을 위해 간 하네다 공항. 시간이 남아 들른 책 판매대에 소설가 모리 히로시(森博嗣)의 ‘작가의 수지(收支)’라는 책이 가장 화려한 곳에서 눈에 띈다. 자기 개발서 등의 베스트셀러가 놓인 자리에 소설가의 에세이라니. 그것도 ‘작가의 수지’라는 도발적 제목이라니. 하긴 흥행에서 불패의 신화를 자랑한다는 작가의 유혹이니, 문학연구자의 주머니를 털기에 충분했다.

본인 말대로 모리 히로시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적은 없다. 데뷔작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누계 78만 부가 최고 기록이다. 이것도 19년을 통해 달성한 것이다. 대박 난 책도 없이 일본 아마존 선정 ‘2000년대 최고판매 저자 톱20’에 들었다. 나고야(名古屋)대학 건축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7년, 취미생활에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 하며 2006년에 대학을 그만 둘 때까지 매일 저녁 3시간을 집필하고 2008년에는 작가를 은퇴한다.

책에서 그는 출판의 대량소비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며,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노리는 글쓰기보다 확실히 책을 사는 팬들을 잘 확보해서 관리할 것을 권한다. 데뷔 후 19년 동안 278권을 출판해 총 1,400만부, 순수익이 15억엔을 벌었다 한다. 계산상으로 1권당 5만부를 팔아 약 540만엔을 번 것으로, 그는 ‘불황시대의 최고의 직업이 어쩌면 작가’일지도 모른다는 넘치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문화와 예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문학에 대한 태도가, 이처럼 자본주의적 논리만으로 무장한 그의 시각에 환멸을 느낀다. 자본주의의 막장이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형을 보는 듯하다. 그가 쓴 매뉴얼에 의하면 순문학 혹은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지향하는 글쓰기는 구시대의 발상이 된다. 아니, 실패자가 된다.

그가 말하는 대칭점에 유미리(柳美里)가 있다. 모리가 ‘작가의 수지(收支)’로 건방을 떨 때, 유미리는 ‘가난뱅이 신 아쿠다가와상(芥川賞) 작가 빈궁생활기’를 발표해 화제를 뿌렸다. 진보매체인 ‘창(創)’과의 밀린 원고료 지불 투쟁을 상세히 밝힌 내용이다. 진보 미디어라도 작가에게 노동의 대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수 모리 히로시가 데뷔했던 1997년, 일본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던 작가는 고졸 학력의 재일 조선인 유미리였다. 1994년 ‘가족시네마’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지만 사인회가 열릴 예정이던 서점들에 ‘독립의용군’ ‘신우익’의 이름으로 협박전화가 걸려와 사인회는 중지되었다. 유미리의 투쟁은 여기서 시작이 된다. 그녀는 위축되지 않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역사수정주의자, 우파 보수들과 일년에 걸친 격렬한 논쟁을 전개했다. 미디어를 철저하게 피하며 자본을 축적해 온 모리의 20년과는 대조적으로, 유미리는 소설작품, 블로그, 트위터에 자신의 사생활까지 노출하면서 소신을 밝히고 논쟁을 벌이다 많은 상처를 입었다.

2008년 모리는 여유롭게 은퇴를 하지만, 유미리의 에세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궁핍한 처지에 놓여있는 전업 작가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들로 메워져 간다. 물론 그녀에게도 ‘생명’ 4부작이라는 밀리언셀러가 있지만 억대가 넘는 인세는 아이 아버지, 연상 유부남의 암치료를 위해 쏟아 부었고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유미리는 일본 사소설(자신의 사생활을 테마로 한 이야기)의 전통에 서 있다. 개인의 사적 체험이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작가의 체험은 실재하는 모든 것이고 실재하는 모든 것은 곧 우리를 둘러싼 사회이다. 작가는 현실에서 소재를 취해 사회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현실에 메시지를 던져 새로운 사회를 꿈꾼다 할 때, 유미리의 사소설은 빛난다.

직업으로서 소설 쓰는 모리는 ‘작가의 수지’를 맞춰 부유해지고 성공했지만, 유미리는 한 시대와 사회를 제대로 읽고 성찰하여 행동하게 하는 ‘작가의 책무’를 다하는데 성공하지 않았을까.

고영란 일본 니혼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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