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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미래의 잡스들, 창업카페에서 섞이다

입력
2016.01.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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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토양 위에 싹튼 창업

“취재 오셨어요? 중국 CCTV도 하루 종일 취재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 쟤들은 창업자가 아니라 견학 온 중학생들이에요. 여기저기 구경하며 물어보고 다니더니 지금은 자기들끼리 아이디어 짜는 모양이네요.”

처쿠(車庫)카페 직원인 헬렌 리우(Helen Liu)는 외국 취재진이 낯설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설명했다. 베이징 하이디엔구 중관춘의 창업거리에 있는 처쿠(車庫)카페에는 활기가 넘쳤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얘기하고, 취재진까지 뒤섞인 탓에 시장통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왁자지껄했다.

중국 베이징 중관춘의 창업카페인 처쿠카페에 많은 창업자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중국 베이징 중관춘의 창업카페인 처쿠카페에 많은 창업자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것에서 이름을 따온 처쿠카페는 2011년 문을 열었다. 개업 초기엔 창업자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나누거나 협업하는 공간이었으나 이후 투자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민간 인큐베이터 역할까지 아우르면서 가장 인기 있는 창업카페로 꼽히고 있다.

처쿠카페에선 매일 오후 1시 30분 일상적이지만 특별한 이벤트가 열린다. 이곳을 이용하는 창업자들이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얘기하거나 진행 경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이날 발표한 난충훼이(南忠?ㆍ26)는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앱 개발자들을 위한 무료통합 계정 관리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발표가 끝나고 난충훼이가 자리에 돌아오자, 예닐곱명이 몰려들었다. “원리가 뭐냐” “무료 서비스면 수익은 어떻게 올리냐” “앱 개발자인데 프로그램 활용하고 싶다”등 궁금증을 묻거나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난충훼이가 자신의 창업 아이템 진행경과를 발표(위 사진)한 뒤 자리로 돌아오자 많은 창업자들이 관심을 가지며 그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아래 사진) 김주영기자
난충훼이가 자신의 창업 아이템 진행경과를 발표(위 사진)한 뒤 자리로 돌아오자 많은 창업자들이 관심을 가지며 그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아래 사진) 김주영기자

이런 모습은 발표 후 더 활발하지만, 새삼스러운 풍경은 아니다. 처쿠카페에서 만난 한국인 천예지(27)씨는 타국에서 한국말을 듣자 반가운 듯 먼저 알은체를 했다. “아시아 사람들이 맘껏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카페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천씨는 “함께 시작할 중국 친구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이어 “이곳 창업가들의 활발한 교류에 감탄했다”고 했다. “창업 준비 하냐, 아이템은 뭐냐,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물어오는 통에 귀찮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천씨는 “처쿠카페에서의 경험은 특별하다”며 “제 잇속만 차리기 보다 서로 돕고 의견을 나누는 데 적극적인 이곳 사람들의 모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차고에서 만난 창업자들

처쿠카페의 한 쪽 벽에 이 곳에서 창업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핸드 프린팅이 전시돼 있다. 김주영기자
처쿠카페의 한 쪽 벽에 이 곳에서 창업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핸드 프린팅이 전시돼 있다. 김주영기자

샨시(山西)성 출신인 난충훼이는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했다.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다 인터넷 강의 앱에 관심이 생겨 여기(처쿠카페)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창업에 뛰어들면서 마윈도 나처럼 영어를 전공했다는 얘길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며 “알리바바나 텅쉰처럼 중국의 경제발전을 등에 업고 순식간에 성장하는 회사들을 보면 나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처쿠카페의 장점을 얘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중훼이는 “창업자들끼리 모여 있다 보니 분위기나 정세 파악이 용이해 앞으로의 사업 구상에 뭐가 필요한지 느낄 수 있다”며 “샤오미의 성공 비결 역시 시장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처쿠카페에서 배운 장점들을 살려 꼭 성공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왕쉬거(王徐葛ㆍ27)는 베이징공업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2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앱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의 아이템은 택배를 보관함을 스마트폰과 연동시킨 ‘스마트 캐비닛’. 왕쉬거는 “처쿠카페엔 나처럼 일상생활을 앱과 연결시키는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이 많아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며 “또한 이 곳을 찾는 창업자들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어 더 힘을 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지금은 수입도 없고 진전도 더디지만, 가능성 있는 아이템인 만큼 잘 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각자도생을 넘어서…

중국판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에는 2만여개의 연구소와 기업이 밀집해 있다. 중관춘에서 창업해 전 세계 주요 증시에 상장한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2013년 말 기준 2조523억위안(약 368조원)으로 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액수다.

중관춘이 창업의 메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처쿠카페 사례처럼 각자도생의 경쟁에서 탈피해 협력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협력 시스템’은 새내기 딱지를 뗀 주니어 사업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을 이겨야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남이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싼리툰 소호의 모습. 김주영기자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싼리툰 소호의 모습. 김주영기자

베이징의 주요 지역마다 지명에 ‘소호(SOHOㆍ small office home office)’를 붙인 대형 빌딩이 있다. 오피스와 상업시설이 결합된 소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건물들이다. 중국의 창업 열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호는 창업자들에겐 소비자와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접점을 제공한다.

베이징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번화가인 차오양구 싼리툰(三里?)에도 소호가 있다. 싼리툰 소호의 사무실 임대료는 월 3,000~4,000위안(54만원~71만원)으로 일반 오피스에 비해 약간 비싸지만, 이 곳에 들어선 소규모 회사들은 젊은 소비자들과의 스킨십은 물론 집적 효과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장시빈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자유로운 삶,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되는 일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장시빈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자유로운 삶,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되는 일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창업 6년차인 장시빈(?喜彬ㆍ30)은 프로그래머와 회사를 연결해 주는 구인구직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원래는 직접 회사의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했지만 수요가 많아지자 인력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2014년에 아예 인력과 수요를 연결시켜주는 헤드헌팅에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장시빈은 싼리툰 소호에 사무실을 낸 이유에 대해 “우리처럼 작은 회사들이 많이 입점해 있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나 협업에 용이하다”며 “여기는 미디어가 관심을 갖고 투자자들의 왕래도 잦은 곳이기 때문에 투자나 홍보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협업의 필요성을 절감한 건 대학 시절 창업에 실패했던 경험 덕분이다. 장시빈은 “알리바바와 타오바오와 같은 인터넷 쇼핑사이트가 갓 인기를 모을 때, 비슷한 사이트를 만들었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주변의 조언과 도움 없이 나 홀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실패 후 재기랄 것도 없었다. 경험을 통해 배운 걸 거울 삼아 그냥 다시 하면 그만이니까.

“창업에 한 번 실패했다고 문제될 건 없다. 그냥 다시 하면 된다. 처음 창업할 때도 빈 손으로 했는데 두 번째라고 뭐 대단히 다를 게 있나.”

그리고 그는 지금 직원 100명에 1년 매출이 2000만위안(36억원)에 이르는 회사의 주인이 됐다. 그리고 그는 소호라는 날개를 달고 중국 최고 구인구직 사이트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앙잉카이는 “집, 사무실, 자동차에서 스마트폰이 혁신을 가져오는 데 우리 회사의 기술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지앙잉카이는 “집, 사무실, 자동차에서 스마트폰이 혁신을 가져오는 데 우리 회사의 기술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기자

소호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또다른 창업가를 만났다. 1인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는 지앙잉카이(姜英才ㆍ32)는 최근 자신의 회사가 합병을 해서 도심에서 먼 곳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투자자나 파트너들과 만나기 쉬운 이 곳에 따로 사무실을 얻었다고 했다. 다른 창업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은 그에겐 쓸모 있는 부록이다.

지앙잉카이는 2009년 베이징항공항천대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플래시 디스크 제조업체를 차렸다. 그리고 지난해 1월에 인터넷 회사와 합병해, 스마트폰 화면을 그대로 TV 등 대형 모니터에 연결해 주는 변환 장치를 만드는 ‘트랜스패드’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지앙잉카이는 “집이든 버스정류장이든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니터에 연결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베이징=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사진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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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일보 특별기획 ‘한중일 청년 리포트’의 일부입니다. ▦취업&창업 ▦주거 ▦결혼 ▦관계 등 총 네 가지 주제에 따라 각각 한국, 중국, 일본 청년들의 사례를 다루어 총 12편의 기사가 연재됩니다. 한국일보닷컴에서 전체 기사를 디지털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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