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동구 귀빈예식장 자리에 아울렛점 개점
대구ㆍ경북의 향토기업들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급성장기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지역 경제를 꿋꿋이 지켜왔다. 글로벌경제위기 속에 이들 기업은 새로운 100년을 기약하며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전통의 향토기업을 찾아 이들 기업의 역사와 미래 100년 전략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1> 대구백화점
전국 유일의 향토백화점인 대구백화점이 올해 창립 72년을 맞아 대백 100년 준비에 나섰다. 급변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와 요구에 맞춰 신규브랜드를 유치하고 사업다각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선언했다.
지방에 남은 전국 유일 향토백화점
대구백화점은 현대 롯데 신세계 등 재벌 유통업체가 장악한 지방 백화점업계에서 지금까지 유일하게 명맥을 잇고 있는 기업이다. 부산 대전 광주 등의 향토백화점들은 모두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됐고 대구의 동아백화점도 이랜드에 흡수됐다.
대백의 역사는 창업주인 고 구본흥 선대회장이 1944년 1월 대구 중구 삼덕동의 66㎡ 남짓한 대구상회를 인수한 것이 시초다. 인수 1년 만에 인수대금의 절반을 회수할 정도로 놀라운 영업력을 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대구백화점 본점이 있던 자리의 유복상회를 인수해 사세를 확장하고 나섰다.
전후 지역 유력 유통업체들은 미군부대나 밀수를 통해 흘러나온 외제품 취급이 많았지만 대구상회는 국산품판매에 집중했고, 당시 보기 드물게 정찰제판매를 권장했다.
대백이 본격적으로 도약한 것은 1960년대 중반 10층짜리 대백 본점을 건축하면서부터다. 당시 대구시장과 경제계, 금융권의 권유와 지원으로 새 건물 건축을 시작했고, 1969년 한강이남 최고의 현대식 10층짜리 백화점을 준공했다. 본점 주변에 각종 의류점과 식당 등이 몰려 들었고, 교동시장 중심의 상권이 남하하는 계기가 됐다.
본점 신축과 급성장
본점 신축 5, 6년만인 1970년대 중반 무렵 대구백화점 부근은 지역 최대의 유통 중심지로 부상했다. 땅값도 지금까지 대구지역 최고다. 북성로, 교통, 종로를 중심으로 한 도심상권도 대백이 있는 동성로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1977년 평리 슈퍼체인(현재의 대백마트)으로 시작한 슈퍼체인 사업은 지역 슈퍼마켓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다. 1982년 국내 최초로 시범유통사업자 지정 후 산격점, 봉덕점, 내당점 등을 잇달아 오픈 했고 이들 업소에서도 가격표시제, 정량표시제를 시행했다.
지방업체 최초로 1979년 신용판매제를 도입했다. 현금 없이 ‘백화점카드’로 물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세계 미도파 롯데에 이어 국내 4번째였다.
1988년에는 증시에 상장, 기업을 공개했고 1993년 대봉동 재개발지구에 지하 5층 지상 11층에 한강이남 최대 규모의 프라자점을 개점했다. 프라자점은 ‘전 생활백화점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을 통해 국내 유통업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외환위기는 대백에게도 시련이었다. 1998년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고,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22개월 만인 2000년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과 함께 새로운 비상
지난해 4월 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과 함께 대백은 새롭게 비상하고 있다. 대중교통에 의한 접근성 개선으로 신규 고객이 크게 는 것으로 분석된다.
젊은 고객들과 합리적인 가격대를 선호하는 대중적인 브랜드를 선호하는 고객들의 취향에 맞춰 대중적인 명품인 매스티지(masstige)와 컨템포러리(contemporary)등의 브랜드를 확대하고 있다. BREE, 프라텔리로세티, 드빠르망174 등 다양한 직수입 브랜드를 운영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특히 대백은 내년 초 아울렛에도 진출한다. 동구 귀빈예식장 자리에 짓고 있는 지하 6층, 지상 8층 연면적 6만9,697㎡의 건물이 대백아울렛이다.
김강석기자 kimks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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