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신당 기존 인물 이삭줍기만
더민주는 혁신 외면, 고립 자초
구태 정치 야당에 패배 그림자
안철수 신당이 당명을 ‘국민의당’으로 정했다. ‘새정치’는 빠졌다. “국민들에게 낡아 버린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불과 2년도 안돼 ‘새정치’라는 이름이 야당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름이 실재를 규정한다는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의 관점에서 보면 새정치의 실체는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새정치’는 안철수의 브랜드나 다름없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재작년 민주당과 합당한 것도, 지난해 탈당한 것도 명분은 새정치였다. 식상한다는 이유만으로 헌 옷 버리듯 하기에는 그에게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당명에서뿐만이 아니다. 신당의 행보에서도 새정치가 희석되는 모습이 역력하다.
새정치의 실체가 모호하지만 기존의 구태정치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좋은 정치를 펴고 국민에게 다가서자는 의지의 표출이다. 그 것은 기성정치에 때묻지 않은 참신한 인물의 영입과 당의 체질 개선, 미래에 대한 비전과 대안 제시로 구체화된다.
안 의원이 최근 영입한 면면을 보면 눈에 띄는 인물이 드물다. 정치판에서 늘 봐왔거나, 잊혀졌거나, 결별했다 다시 합류한 이들이 다수다. 논두렁에 떨어진 이삭줍기 식 인물 영입이라는 평이 나오는 배경이다. 원내 교섭단체(의원 20명)를 구성해 88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자는 생각이 새정치 구현보다 앞서는 듯하다. 첫 외부인사 영입이 실패작으로 끝난 건 예견된 사태다.
국민의당 창당 발기문은 ‘민생정치’라는 깃발만 내걸었을 뿐 구체적인 알맹이는 없었다. ‘합리적 개혁’에 대한 청사진도 없었고, 정치, 경제, 안보, 외교 등 현안에 대해서도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안 의원은 극단적 이념과 진영논리를 벗어나 합리적 실용주의를 추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중도층과 무당파를 끌어들인다는 전략이지만 이것 역시 새정치의 개념이나 본질과 부합된다고 보기 어렵다. 중도층을 소구대상으로 한 정치공학적 접근에 머무를 뿐 새로운 가치나 지향점 제시와는 거리가 멀다. 지지층의 외연 확대가 목적이라면 새정치연합 대표 때 얼마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결국 새정치는 자신의 정치 세력 구축과 대선가도를 향한 포장과 수사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새정치의 실종은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혁신만이 살길”이라며 안철수가 주장한 10개 혁신안을 마지못해 수용했으나 혁신안은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됐다. 애초 혁신은 안중에도 없었고 안철수를 주저앉히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앓던 이가 빠진 마당에 치료고 뭐고 필요 없다는 식이다. 야심 차게 내놓은 현역의원 20% 물갈이 원칙도 의원 탈당이 줄을 잇자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친노와 486 운동권’세력만 남아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돼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지금 야당에는 새정치는 온데간데 없고 구태정치만 남았다. 안철수, 문재인 눈에는 대권만 어른거리고, 그 주변 세력은 공천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이런 야당을 유권자들이 변함없이 지지하리라 보는 것은 큰 오산이다. 신년여론조사에서 예외 없이 나온 결과는 3자 구도하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필패라는 사실이다. 안철수 신당 발표 후 무당층이 대거 이동했는데 예상과 달리 새누리당으로 가장 많이 이동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낀 무당층이 야당 분열에는 더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2008년과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州)별 승자와 득표율까지 거의 정확히 예측한 통계 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저서 ‘신호와 소음’에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올바른 예측을 하려면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겸손과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예측하는 용기,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안철수와 문재인은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는 뻔한 사실을 예측하는 겸손도 용기도 지혜도 없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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