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2016년은 선거의 해다. 대만은 1월 16일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동시에 실시한다. 한국에서는 4월 13일에 국회의원선거가 예정돼 있다. 필리핀은 5월 9일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함께 치른다. 이 세 국가는 1974년부터 전 세계를 휩쓸었던 제3의 민주화 물결에 합류한 아시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6년 2월 필리핀에서 ‘피플파워’가 당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내쫓음으로써 민주주의의 막을 올렸고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한국은 가장 성공한 제3의 민주화 물결 사례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으며 이에 영향을 입은 대만에서는 1987년 7월에 당시 약 40년간 지속되던 계엄령이 해제됐다.
이 가운데 한국과 대만의 민주주의 발전과 선거는 놀라울 만큼 유사성을 보인다. 주지하듯이 한국과 대만은 모두 유교문화와 불교의 영향권 아래 있고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의 대표적인 용이 되었으며 아직도 분단국가로서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상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재벌중심과 수출주도의 경제성장이 추진됐고 중산층이 참여한 6월 항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남북관계가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이에 비하여 대만에서는 중소기업이 경제성장의 동력이었고 ‘위로부터’ 계엄령해제와 민주화 프로그램이 제시되었으며 정치군사 측면에서 양안관계의 회복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러나 2016년 대만의 대통령선거를 보면 2012년 또는 그전의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연상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2012년 한국에는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되었는데 이번 주말에는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대만에서는 두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완성되는 셈이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여당인 국민당의 대통령 후보도 여성이었으나 지지율의 격차가 워낙 커서 막판 후보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교체된 남성 후보도 아직 야당인 민주진보당 여성 후보에게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대만의 독립을 강조하는 야당 민진당의 대선승리가 예상되자 2015년 11월 중국과 대만 통일에 우호적인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1949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대만과 중국 사이의 정상회담은 66년 만에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임기 말이라는 조건 때문인지, 한반도 남북의 두 차례 임기 말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지지율이나 선거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2008년부터 8년 동안 집권해온 국민당 출신 마잉주 전 총통도 같은 해 2월에 취임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대만 제1도시인 타이베이(臺北) 시장을 역임했고 한반도 대운하 같이 대만의 고속도로와 공항을 확충하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마 전 총통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천수이벤(陳水扁) 전 총통을 이기고 다시 정권을 교체했다.
다른 한편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민진당 출신 천 전 총통은 1997년 한국에서 선보인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떠오르게 한다. 천 전 총통은 2000년부터 8년간 재임하는 동안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과 자주 비교됐다. 두 사람은 모두 노동과 인권 변호사 출신이었고 청렴과 근본주의적인 접근법을 취했다. 임기 뒤에는 친척의 비리로 사법부의 조사를 받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30년 동안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국과 대만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대만은 정권교체로 민진당이 집권하게 돼도 한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양안관계의 퇴보와 경제의 악화를 피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대만에게서 민주주의가 더 이상 퇴보하지 않도록 교훈을 찾아야 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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