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팀 연고지인 샬랄라는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 1,000km나 떨어진 곳입니다. 연고지에 교민들도 거의 없어요. 그래서인지 홈경기만큼 원정 경기도 즐겁죠. 어떻게 알고 오시는지 경기장을 찾은 교민들께서 김치도 선물해 주셨는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지난해 9월 오만 프로축구 리그에 진출한 ‘임자도 소년’김귀현(25·알 나스르)은 요즘 프로 데뷔 후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비록 오만 무대가 중동 내 주요 리그에 포함되지 않아 국내 팬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꿈에 그리던 붙박이 주전이 돼 마음껏 경기장을 누비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신안군의 작은 섬 임자도에서 태어나 14세 때인 2005년 아르헨티나 벨레스 사르스필드 유소년 팀에 입단한 뒤 성인 무대까지 밟았던 그의 인생 스토리는 유명하다. 특히 지난 2011년엔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버지 앞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 사연이 지상파 방송을 통해 상세히 소개되며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하지만 2013년 K리그 대구FC 입단 후 팀의 강등과 주전 확보 실패라는 쓴맛을 보며 그의 이름도 잊혀져 갔다. 오랜 해외 생활로 국내 지도자들과 안면이 없어 대구에서 방출된 뒤 새 팀을 구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다행히 K3리그 경주시민축구단에 입단해 경기력을 유지했고, 그의 과거 활약을 본 에이전트의 제안으로 기적처럼 중동 무대에 진출하게 됐다.
전반기를 마친 현재까지 김귀현은 팀이 치른 14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정규리그와 국왕컵, 마즈다컵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이지만 어느 축구인생을 통틀어 가장 신이 나는 시즌이란다. 특히 지난해 12월 31일 치른 국왕컵 32강전 알 이티하드 샬랄라전에서는 후반 10분 쐐기골을 터뜨리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대구에서 뛰던 지난 2014년 10월 K리그 챌린지 고양전에서 골 맛을 본 지 1년 3개월만의 골이다.
그의 꾸준한 활약에 오만 팬들도 낯선 한국 선수에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최근엔 홈팬들이 직접 태극기를 만들어 경기장에 내걸어줘 가슴이 뭉클했다”고 밝힌 그는 “원정 경기 때는 상대팀 연고지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응원 오시곤 하는데, 그 때마다 팀이 이겨 너무 기뻤다”고 전했다. 현지 SNS에서는 ‘왕’에 빗댄 ‘KIM KING’이란 애칭도 등장했다.
김귀현의 목표는 팀의 숙원이기도 한 우승. 알 나스르는 현재 6위를 기록 중이지만 선두 알 오로우바(승점 25)와 승점 4점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알 나스르는 오만 대표팀을 다수 배출하는 강팀으로 꼽힌다”고 소개한 김귀현은 “팀의 목표는 리그와 국왕컵, 그리고 현재 준결승에 올라있는 마즈다컵까지 모두 휩쓰는 것”이라며 “오는 17일 시작되는 후반기에도 전 경기 출전해 팀의 우승에 큰 몫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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