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던 시기였다. 전두환 정부가 사람들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돌리고자 ‘3S 정책’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오마담의 외출’같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전국의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사진작가 권태균(1955~2015)이 1983년 6월 강릉에서 촬영한 ‘오마담의 외출’은 영화를 홍보하는 현수막 대신, 그 아래 있는 두 노인을 포착한다. 6월은 마침 강릉 단오제가 열릴 때다. 전통 명절 축제를 맞아 나름대로 좋은 한복을 차려 입고 시골에서 구경 나온 두 남자의 표정은 왠지 어색하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일까.
지난해 1월 타계한 권태균의 1주기 유작전 ‘노마드’가 서울 역삼동 사진전시 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권태균은 이 연작을 통해 한반도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을 방랑하며 1980년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강남역 근방의 빌딩 숲이 내려다보이는 창 밖에서 전시장 안으로 고개를 돌리면, 35년 전 은마아파트 근처 황무지에 초가집이 서 있는 옛 강남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 이채롭다.
권태균 사진의 특징은 피사체 인물의 자연스런 모습을 드러내는 데 있다. ‘보기 좋은 그림’을 위해 인물의 자세나 전체 구도를 미리 설정하는 ‘서구형’ 사진과 차이를 보인다. 덕분인지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이 살아 있다. 작가는 ‘노마드’를 처음 공개한 2010년 개인전을 앞둔 인터뷰에서 “나의 사진적 관심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일 전시 개막과 동시에 ‘노마드’연작 110점을 엮은 사진집이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이규상 눈빛 대표는 “현대의 한국은 급격한 변화로 인해 과거의 흔적이 많이 사라졌는데, 권태균이 그 변화의 끝에서 전통적인 삶의 마지막 장면을 포착했다”며 “1980년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작품들”이라 말했다. 미술평론가 정진국씨는 권태균의 사진이 “함께 했던 기억을 되새기는 즐거움을 나눠주는 사진”이라며 “한국 사진이 그의 작업을 중심으로 비로소 고전다운 고전을 쌓게 됐다”고 평했다. 전시는 2월 20일까지. (02)3469-0822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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