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직생활 3개월이 지난 장윤수(56)씨는 요즘 출근시간이 기다려진다. 배치된 부서에서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공직 입문 때 세웠던‘시민에 대한 봉사’를 실천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공직 새내기인 장씨는 지난해 9월 18일 대전시공개경쟁임용시험 합격자 발표에서 55세 최고령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4년 뒤면 정년으로 공직을 떠나야 한다.
그가 다른 공무원들이 서서히 퇴직을 준비하는 나이인 50대 후반에 공직에 들어온 것은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공직에 대한 선망 때문이다. “아버님이 교육계에 몸담고 있어 어려서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며 “하지만 자라면서 신체적인 핸디캡으로 교단에 서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접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공직에 대한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 잠시 고시에 뜻을 두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시일 내 승부를 보기 어렵다는 생각과 가정 형편을 생각해 취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다행히 당시에는 지금 젊은이들과는 달리 직장에 대한 선택폭이 넓었다.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에 금세 싫증을 느꼈다. 그는 성격상 단조로운일을 싫어한다.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는 게 그가 1년여만에 은행을 그만둔 이유다. 다시 시험을 쳐 민간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대학전공과 어울리게 투융자부서를 거쳐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부서에 발령을 받아 신나게 일했다고 그는 전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랄까 대리 말년에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해 1년여간 병원 신세를 졌다. 보험사에서 진급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승진을 하면서 계열 카드사로 옮겼다. 거기서도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금융계열사간 통합을 하면서 내부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졌고 그 여파로 그는 40대 중반 나이에 직장을 나왔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만 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로 나오니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했다. 그때 지인이 대전에서 도자기 판매 대리점을 맡아보라고 권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그가 아무 연고도 없던 대전에 내려온 계기였다.
부인과 함께 10여년 가량 도자기 대리점을 운영하던 그는 2013년 방송뉴스에서 50세가 넘은 사람이 공무원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공직에 대한 꿈은 이제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갑자기 마음속에서 도전의욕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졸업 당시 공무원 시험을 염두에 두었던 그는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7급에 도전키로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안정적인 공직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높아졌다.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직장이 공무원일 정도로 세태가 급변한 것이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보통 몇십 대 일, 어떤 때는 100대 1을 넘을 정도로 치열해졌다.
1년 정도 공부를 했는데 안됐다.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괜히 도전했다는 후회도 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공무원 시험을 보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자문을 해봤다. 그는 “순간 나에게 7급이든 9급이든 직급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9급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보통 9급 공무원은 처음부터 시 본청 근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시청 투자유치 담 당 부서에 배치됐다. 그는 “시장님의 배려로 시청에서 바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1년이든 2년이든 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막상 안으로 들어와 공무원들이 일하는 것을 보니 모두 슈퍼맨처럼 보인다”며 “지금은 배우는 단계지만 1년을 선배 공무원들의 10년으로 인식하고 근무할 각오”라고 말했다. 다행히 금융권 경력이 투자유치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아직은 투자유치 현장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지만 미래를 대비해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장씨는 민간 경력자들의 공직 진출에 긍정적인 편이다. 그는 “공무원 생활 3개월밖에 안됐지만 민간기업에 있을 때보다 업무의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는 느낌을 갖는다”며 “민간인들이 공직에 들어오면 업무에서 우선적으로 민간의 관점을 고려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40~50대에 민간기업을 나오는 인력들이 경력을 사장시키지 않고 국민들을 위해 쓰여지면 국가 차원에서도 바람직 한 것 아니냐”며 “희망을 갖고 한번 도전해 보라”고 권유했다.
허택회기자 th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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