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은 미리 예견하지 못한 느닷없는 도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이런 일이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대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분노와 불신이 높아지고, 결코 북한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중국의 본심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북핵 4차 실험 이후 시나리오로 거론됐던 일이 한가지 더 현실화됐습니다. 이미 보통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ㆍTHAAD)의 한국 배치 문제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희망에도 불구, 중국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동의하지 않아 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이나 핵 실험을 할 경우에는 이를 명분 삼아 ‘사드’ 배치 논의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배적 예상이었습니다.
아직 미국 정부가 공식 제기하지는 않았으나,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이 사드의 한국 배치를 정식 공약으로 제시하고 나섰습니다. 루비오 의원은 4차 북핵 실험 직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응징과 함께 미사일 방어망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늘 나온 공약은 며칠 전 추상적으로 제시했던 ‘미사일 방어망 강화’ 주장을 보다 구체화한 것입니다.
루비오 의원은 자신의 대선운동 홈페이지(https://marcorubio.com/news/marco-rubio-north-korea-policy-plans-nuclear/)를 통해 북한 미사일 위협의 핵심 억제대책으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사드 배치가 미국 미사일 방어망(MD)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격 능력도 향상 시키는 방안이라고 소개한 점입니다. 또 명시적인 건 아니지만 사드 배치가 한국 방어용이라기보다는, 북한의 타격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는데 더 긴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루비오 의원은 공화ㆍ민주 양당을 통틀어 한국에 가장 관심이 많은 대선 후보입니다. 지난해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와 과거사 관련, 퇴행적 발언을 내놓았을 때 대선 주자 가운데 유일하게 이를 질타한 후보입니다. 또 공화당 경선 TV토론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을 열거하며, 한국을 일본보다 먼저 거명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선거 예측시장에서 루비오 의원은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1.86대1)에 이어 당선 가능성(7대1)이 가장 높은 후보입니다. 같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8대1), 데드 크루즈(10대1)는 루비오 의원보다 낮습니다. 확률로만 따지만 공화당의 제일 유력한 후보가 사드 배치를 공약으로 내건 것이지요.
대선 운동 과정에서 유력 후보의 공약이 경쟁 후보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대북 강경정책이 초당파적 지지를 얻고 있는 걸 감안하면 루비오 의원의 ‘사드 공약’은 단순히 ‘공약’(空約)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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