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랑, 이진순, 이원경 등 당대 최고 연출가들의 대표작에 출연했던 백성희씨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아무도 나한테 큰 소리를 못 쳤다. 다른 선배 언니들한테는 호통을 쳐도 나는 혼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유가 좀 있지. 내 남편이 그 선생님들하고 친구였거든.”
백씨가 현대극장 단원 시절 만난 남편 나조화는 소설가 나도향의 동생이었다. 1944년 19세에 열네 살 연상인 그와 결혼했다. 1943년부터 빅터가극단 배우로 활동한 백성희는 그의 연기를 눈여겨본 극작가 함세덕의 추천으로 현대극장(대표 유치진)에 입단했다. 극장 해체 후 47년 극단 신협의 배우로 활동했다.
신협 대표 이해랑과는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 오영진의 ‘인생차압’(1957) 등을 만들었다. 그 후 신협이 국립극장의 전속극단인 ‘국립극단’이 되면서 원년 멤버가 됐다. 백씨는 회고록에서 “유치진 초대 국립극장장은 입장료 수입 중 제작비를 뺀 나머지의 30%를 출연료로 지급했다”며 “배우 월급이 당시 회사원의 2, 3배였다”고 밝혔다. 유치진과는 그가 쓴 ‘조국’(1947)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를 비롯해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1955) 등에서 만났다.
연출가 임영웅과는 오태석 희곡 ‘환절기’로 만나 ‘환상살인’(1969) ‘장 아누이’(1979) ‘북간도’(1980) 등에서 함께 했다. 오태석과는 ‘물보라’(1978) ‘사추기’(1979) ‘여자가’(1985) 등에서 만났다.
2004년 백성희 데뷔 60주년 기념 자전극 ‘길’의 대본을 쓴 이윤택과는 ‘홍동지는 살어있다’(1993) ‘문제적 인간 연산’(2003) 등에서 함께 했다. ‘길’에 함께 출연한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잠깐 대사를 잊어버리시곤 무척 우아한 모습으로 절 바라보셨는데, 정말이지 그 존재만으로도 완벽한 배우셨다”고 회고했다.
4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무대 위 짝꿍’ 배우 장민호와는 1950년 국립극단 선후배로 처음 만났다. ‘원술랑’(1950)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이 함께한 작품은 200편이 넘는다. 그 중 부부로 나온 작품만도 ‘백년 언약’ 등 20여 편이다. 2011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작 ‘3월의 눈’에서도 노부부를 연기했다. 이 작품의 연출은 손진책 당시 국립극단 예술감독이고, 극작가는 2000년대 대학로 대표 극작가 배삼식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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