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난 1년간 노사정이 추진한 노동개혁의 결실을 맺을 때입니다. 사정상 참석 못한 노사정 대표 여러분 모두 소중한 것들이 지켜지고 더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님과 덕담을 나누고 싶었는데 뵙지 못 해 섭섭합니다."(박병원 경영자총협회 회장)
고용부는 8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2016년 노사정 신년인사회'를 개최했습니다. 1985년부터 30년째 열리고 있는 신년회는 노사정이 한 데 모여 덕담을 나누고, 한 해 노동시장의 상생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자리입니다. 이날도 이기권 장관과 박병원 경총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등 노동분야 주요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행사장 연단에 큼직하게 쓰인 '대한민국의 새 출발, 노사정이 함께 합니다'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노동계 인사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행사장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서로를 격려하는 사람들은 모두 재계나 학계, 고위 공무원들이었습니다. 노동계의 불참은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바로 전날 정부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하고, 앞서 지난해 9월 기간제ㆍ파견법 등 노동계와 협의 없이 노동 5대 법안을 발의 하면서 노정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날 신년회는 꼭 1년 전 노정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와 대조됐습니다. 지난해 신년회에서 이 장관은 "미래 세대의 고용생태계를 위해 노사정이 '동심동덕(同心同德)'의 마음으로 힘과 지혜를 모으자"고 요청했고, 김동만 위원장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책임 있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협상이 잘 안되면 투쟁도 열심히 해 나가겠다"고 의미심장한 덕담을 던졌는데, 그의 발언이 1년 만에 현실이 된 셈입니다.
신년회는 노정 관계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습니다. 2013년 12월 정부가 철도파업의 책임을 묻기 위해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에 5,0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 노동계와 갈등을 빚자 한국노총은 정부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2014년 신년회를 불참한 바 있습니다. 2년 전만큼이나 정부와 노동계의 골이 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노총의 한 핵심 간부는 "우리라고 연초부터 얼굴을 붉히고 싶겠느냐"며 "정부가 노동계를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치부하는 마당에 (신년회에서) 떡이나 자를 수는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노총의 신년회 불참은 노사정위 탈퇴 초읽기로 풀이됩니다. 한국노총은 11일 오후 핵심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지난 9ㆍ15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노사정위 탈퇴를 공식 선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날 박병원 경총 회장은 "일부 언론을 통해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탈퇴 소식을 접했는데 사실이 아니길 빈다"며 "김 위원장을 만나 설득하겠다"고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 장관은 올해 신년 덕담에서 ‘백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리가 절반이고, 십리가 또 절반이다’라는 고사성어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을 인용하며 마무리의 중요성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길이 남을 사회적 대화의 결과물'이라는 노사정 스스로의 평가와는 반대로 대타협은 용두사미로 전락하는 모양새입니다.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공언한 정부는 양대 지침 강행으로 노동계의 신뢰를 져버렸고 노동계는 총파업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사실상 19대 국회 법안 처리는 불투명해 졌습니다. 청년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노동개혁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면서 병신년(丙申年) 노동시장은 씁쓸한 정초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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