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이 미국 대선의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각 정당ㆍ후보별 판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미 대선은 총기소유, 난민정책 등 주로 국내 이슈에 큰 영향을 받아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테러, 이슬람 종파 갈등 등 굵직한 대외 이슈들이 부각되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이 해외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미국의 대북 정책과 북한의 움직임이 선거판의 주요 이슈로 부상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강경한 대북 정책 노선을 유지해 온 공화당 후보들은 핵실험 이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줄곧 온건한 대북 정책을 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민주당 소속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국면이다.
민주당 후보들은 북한의 핵실험 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오바마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현 정권과 같은 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겐 이번 북핵 이슈가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클린턴 후보는 오바마 정부 제1기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온건 타협 성향의 외교 정책 밑그림을 그린 당사자이다.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 매튜 번 연구원은 “클린턴 후보가 장관재임 당시 주도해 온 ‘전략적 인내’ 정책이 취약점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이번 핵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클린턴 후보와 당내 경쟁 중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경우, 궁지에 몰린 클린턴 후보의 반사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 샌더스 후보는 그 동안 경제활성화 등 주로 국내 이슈를 선점하는 데 집중해 왔기 때문에 북 핵실험 이슈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현 정부를 성토할 소재가 생긴 공화당 소속 후보들은 다소 느긋한 표정이다. 거친 화법의 도널드 트럼프는 ‘북한의 미치광이(김정은)’라는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마음 놓고 온건적인 민주당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마르코 루비오 후보도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장관 외교 정책의 실패”라며 비난 대열에 가세했고 역시 경선에 나선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 최고경영자도 “김정은은 위험한 지도자”라며 유리하게 작용하는 대북 이슈를 활용하기에 여념이 없다.
백우열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공화당 입장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강력한 대권주자인 클린턴 후보까지 견제할 수 있는 공격 카드가 생긴 셈”이라며 “‘대북 강경 자세’라는 공화당 고유의 강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민주ㆍ공화당 모두 ‘북한 붕괴론’에 기반을 둔 실패한 정책을 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신 인사들도 “경제 위기에 비틀거리는 북한이 정치적으로도 곧 붕괴될 것”이라는 발언을 공공연히 해 왔다. 유성진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만일 오바마가 아닌 공화당 대통령이었다면 이번 북 핵실험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후보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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