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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북핵이 드러낸 부끄러운 우리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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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북핵이 드러낸 부끄러운 우리 민낯

입력
2016.01.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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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기대 끝내 저버린 북한

미국의 제재 호언은 이율배반

‘을’ 을 자초하는 우리 대북정책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혼미하다. 신년사에서 핵에 대해 일언반구 없다가 기습적으로 추가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 김정은을 두고 “교활하다” “위장전술” 등의 분노가 터져 나오지만 부질없는 토로일 뿐이다. 이미 헌법에 핵 보유국임을 선언하고, “비핵화는 없다”고 수 차례 공언해온 북한이고 보면 신년사 하나에 막연한 기대를 품은 우리의 순진함이 되레 부끄럽다.

국제사회가 들끓는 건 당연하다. 플루토늄, 우라늄에 이어 이번에는 수소탄 실험이라고 주장하니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북한의 악행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제어하지 못하는 권위의 추락이 말이 아니다. 핵 능력에서 상당수준의 진전을 이뤘을 것이 분명해 안보 차원에서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온갖 제재 방안이 쏟아져 나온다. 유엔 안보리는 트리거 조항을 앞세워 ‘강력한 추가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도 행사 가능한 모든 양자 카드를 꺼내 들 기세다. 중국의 반발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관ㆍ기업까지 제재하는 전면적 금융제재 방안이 미국에서 다시 나오고, 한미는 핵우산, 장거리폭격기, 잠수함탄도미사일 등 확장억제 수단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서 우선 느끼는 건 기시감이다. 길게는 20여 년 전 1차 핵위기가 터졌을 때부터, 가깝게는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지겹도록 보아왔던 수순들이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안보리가 긴급 소집되고, 제재 수위를 놓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옥신각신하고, 미국이 유엔과 별도로 자체 제재에 나서고…. 이번에도 중국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 대북제재를 하느냐가 관건이라지만 ‘한반도 안정과 현상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중국이 이런 요구에 부응할지는 미지수다. 결의안 통과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이 티격태격하다가 그저 그런 내용으로 봉합하는 결과가 다시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나마 핵ㆍ미사일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6차례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나올 만한 제재 수단은 대부분 나온 상태다.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건 이해당사국들이 정말 북핵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느냐는 점이다. 북한의 2ㆍ29 합의 파기 이후 미국은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으로 대화를 거부해 왔다. 그 사이 북한이 핵능력 고도화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온 것은 물론이다. 제재는 필요하고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대화 거부가 제재의 수단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핵을 방치해 결국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책임이 적지 않은 미국이 이제 와서 강력한 제재를 호언하는 모습을 보는 심사가 편치 않다.

북한 핵실험 직후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대책을 숙의했다. 일본은 즉각 한미일 3각 공조를 들고 나왔다. 관방 부(副)장관은 미국이 그토록 원하던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 필요성을 다시 거론하고 일본 언론에서는 북핵이 자위대의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는 첫 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국 배치 문제가 수면 위로 등장하고, 이 기회에 한국을 미사일방어(MD) 체제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미국과 일본의 신 군사동맹에 걸림돌이 돼 왔던 현안을 북핵 정국을 이용해 한 방에 해결해 보려는 계산처럼 읽힌다. 미일의 이런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중국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중 관계 훼손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을 밀어붙이리란 기대는 난망이다.

우리에게 대북 지렛대가 전무한 것은 통탄할 일이다. 이 와중에 고작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마치 큰 전략적 결단인 양 선전하는 꼴이 정말 우습다. 북핵을 머리에 지고 있는 건 우리인데 이렇게 속수무책이 된 것은 손발 다 묶고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는 우리 외교의 무능과 무개념, 그리고 대미 사대주의 탓이다.

김정은이 핵실험을 결심한 시점은 지난해 말 남북 당국회담이 결렬된 지 불과 사흘 뒤다. 북한이 남한에 아쉽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는 한 우리는 대북문제에서 ‘을’신세를 면할 수 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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