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닷컴 와 보니까 인터넷은 트래픽이야. 클린 사이트? 누가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냐. 그래 갖고 먹고 살겠니. 어디, 얼마나 가나 한번 보자.”
2014년 5월 19일, ‘클릭 클린, 반칙 없는 뉴스’라는 슬로건과 함께 새로운 한국일보 사이트, 한국일보닷컴(www.hankookilbo.com)의 문을 열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사이트 오픈 후 안정화 작업과 콘텐츠 기획ㆍ제작으로 밤낮 없이 일할 무렵, 모 중앙일간지에 다니는 선배 기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그 선배는 계속 편집국에서 일하다가 수개월 전부터 닷컴 자회사에 파견되어 일하는 중이었다.
나보다 훨씬 오랜 기간 신문기자로서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기자로서의 자부심, 저널리즘에 대한 믿음이 오히려 더 강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닷컴 자회사에 간 후 순식간에 언론사닷컴의 어뷰징이나 각종 ‘더티플레이’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노력을 해 보려는 이들을 순진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언론사닷컴 사이트는 초기화면부터 낚시기사와 낯뜨거운 광고로 뒤덮여 있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활용해 같은 기사를 수십, 수백 건씩 재전송하는 ‘어뷰징’도 예삿일이었다. 광고 수입을 위해선 트래픽을 늘려야 하고, 트래픽을 늘리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언론사닷컴의 관행이었다.
이런 관행에 정면 도전하며 ‘한국일보닷컴은 클린 사이트로 가자’는 결정을 회사가 내린 것은 아직 기업회생 기간이던 때였다. 당장의 수익이 급했지만 오히려 언론의 정도를 가자고 결정한 것이다. “웹사이트 초기화면은 신문 1면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보는 얼굴이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일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클린 전략을 실행하자.”
경영진이 새로운 도전에 선뜻 힘을 실어주었고, 그렇게 우리들의 노력은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어뷰징이 아닌 페어플레이로 우리 기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할 수 있을까.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단순 배너광고 외에 다른 수익모델은 무엇일까?
연구하고 생각하고 실험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외로웠고 비웃음도 받았지만 점차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름 있는 언론사들이 웹사이트를 깨끗하게 개편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관행에 수치심을 느끼는 언론계 종사자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외부에서 ‘한방’이 터졌다.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어뷰징을 일삼고 선정적 광고를 게재하는 언론사나 단순 광고ㆍ보도자료를 기사로 송고하는 언론사에게 벌점을 매겨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검색 제외부터 퇴출까지 제재 수단이 매우 강력하다. 예전처럼 큰 언론사를 예외로 쳐 줬던 관행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장 낚시기사와 선정적 배너광고, 기사로 위장한 광고 송출 등으로 매월 상당한 매출을 올리던 닷컴은 순식간에 수익원이 없어지게 됐다. 큰 언론사들이 매출에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언론사의 자정 노력만 남았다. 이미 한 인터넷 스포츠연예 매체가 ‘클린 정책’을 선언했다. 타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씁쓸하지만, 어쨌든 언론사들이 새로운 경기장에서 진짜 콘텐츠 경쟁을 시작할 여건은 마련됐다.
다만 최근 개정된 신문법 시행령은 원래대로 재개정해야 한다. 상근기자가 5명 이상 없으면 인터넷신문사 자격을 없애는 이 시행령은 지난해 말 어뷰징과 이른바 ‘유사언론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라며 정부가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제재 대상이다. 굳이 상근직 숫자로 제한을 두지 않아도 알아서 퇴출된다. 오히려 기자 수는 적어도 훌륭한 기사를 쓸 수 있는 대안매체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부작용만 커지므로 시행령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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