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읽을 수 없는 크기 아니고
법이 요구하는 고지의무 다해”
시민단체들 “기업 편향적 판결”
경품행사에서 경품은 안 주고 개인정보 2,400만여건을 보험사에 넘겨 수백억원을 챙긴 홈플러스와 임원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응모권에 1㎜ 글자 크기로 ‘보험사 마케팅용 정보 제공’이라 적는 고객 기만 상술에 면죄부가 주어진 꼴이다. 시민단체들은 “기업 편향적 판결”이라며 비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부상준 부장판사는 8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홈플러스 법인과 도성환(60) 전 사장 등에게 “법이 요구하는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고지 의무를 다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부 판사는 홈플러스의 경품응모권에 ‘개인정보가 보험사 영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내용 등 법적 고지사항이 적힌 점을 들어 “응모고객들이 개인정보가 보험사에서 쓰인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홈플러스가 응모권의 고지사항을 1㎜ 글자크기로 쓰는 편법을 썼다는 검찰의 주장에 부 판사는 “사람이 읽을 수 없는 크기라 단정할 수 없고, 복권 등 다른 응모권의 글자 크기와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봤다.
돈벌이 목적으로 보험사에 고객 정보를 넘긴다는 점을 알리지 않은 점에 대해선 “법적 의무는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개인정보보호법(제3자 정보제공ㆍ17조) 규정에 ‘개인정보 이용 목적’을 알리게 돼 있지만 ‘유상판매’여부를 명시하도록 돼있진 않다는 해석이다.
심지어 홈플러스는 실제 당첨자에게 BMW차량 등 경품을 주지도 않았지만 이에 대해선 “공소사실인 개인정보 불법 판매 혐의와 무관하며, 경품기획 예산 책정이 있었던 점 등에 비춰 애초에 경품을 안 줄 의도가 있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부 판사는 말했다. 직원이 BMW 승용차와 골드바 1㎏ 등 경품을 지인에게 당첨시켜 빼돌린 것으로, 이들은 홈플러스에 대한 배신행위로 처벌받았으며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기소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이 시민들의 개인정보 보호라는 법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재판부가 경품행사로 개인정보를 취득해 보험사 등에 넘겨 대가를 받았다는 공소사실과, 경품행사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고객 정보를 보험사에 넘기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는데도 무죄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상식에 어긋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등 13개 단체가 모인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철저히 기업 중심적인 판결”이라며 “업체 간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공유와 활용으로 악용될 소지를 법원이 앞장서 마련해줬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이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 등은 지난해 3월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 판매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집단분쟁조정 신청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도 전 사장 등은 2011년 12월~2014년 6월 11차례 경품행사에서 모인 고객정보 712만건을 건당 1,980원을 받고 보험사 7곳에 팔아 148억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2월 기소됐다. 또 회원가입 등으로 확보한 회원 개인정보 1,694만건을 본인 동의 없이 팔아 83억5,000만원을 챙겨 총 231억7,000만원을 챙겼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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