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편력기
김창남 지음
정한책방 발행ㆍ328쪽ㆍ1만5,000원
‘국민학교’ 3학년 때 인간이 달에 첫 발을 내딛는 광경을 막 보급되던 텔레비전으로 목도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현직 대통령이 종신이나 다름 없는 정치 현실 속에서 살면서 압축성장의 혜택을 맛봤다. 극장과 만화가게에서 보낸 시간이 만만치 않았고, 각종 잡지 속 글과 사진을 즐기며 청춘을 보냈다.
30대 중반엔 인터넷이라는 문화혁명과 조우했다. 1960년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주요 공통점 중 하나는 그들의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와 달리 다종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누렸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자 문화평론가인 저자의 문화 편력은 1960년생의 이러한 문화적 삶을 대변한다. 그래서 ‘조국 근대화’ 무렵 태어나 개발독재를 거치며 그가 경험한 문화는 개인적이면서도 세대 보편적이다.
강원 춘천시에서 태어난 저자는 청소년기 자신이 영위한 각종 문화생활을 돌아보며 시대상을 복원한다. 표만 사면 아무 때에 아무 곳에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1960, 70년대 지방 극장의 모습, TV의 소유 여부가 가정환경 조사 항목 하나였던 시기, ‘보난자’와 ‘전투’ ‘형사 콜롬보’ ‘제5전선’ ‘월튼네 사람들’ ‘초원의 집’ 등 각종 미국 드라마시리즈가 강세를 보였던 70년대 안방 풍경, ‘주먹대장’과 ‘짱구박사’ 등 만화책을 보기 위해 대본소에 진을 쳤던 청소년의 모습 등을 불러낸다. ‘소년소녀’라는 수식으로 시작되던 각종 동화전집으로 ‘소공자’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톰 소여의 모험’ ‘보물섬’ 등 서구 여러 고전들을 접했던 모습도 돌아본다.
잊었던 시대의 아이러니도 접하게 된다. 반공이 절대 국시였던 시기 출간된 반공만화가 성인만화의 역할을 했던 게 인상적이다. ‘때려잡자 김일성’이 흔한 구호였던 시절 김일성의 엽색 행각을 고발하기 위해 만든 만화 ‘김일성의 침실’이 대표적이다. ‘여자들에게 강간을 일삼는 나쁜 놈’을 강조하는 이 만화를 청소년기 저자와 그 또래는 ‘끊임없이 벌거벗은 여자의 몸’에 끌려 탐독했다.
저자는 자신의 세대를 문화적으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나 책을 읽다 보면 1960년생이 첫 ‘TV 키드’였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TV를 자신의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신혼부부 집에서 처음 접한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네 집을 전전하며 ‘우주소년 아톰’과 ‘실화극장’ 등을 봤던 저자는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TV가 생긴 뒤 본격적으로 작은 화면 속에 빠져든다. 대학 입학 뒤 TV를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허구의 세계’로 느껴 멀리하게 됐다는 저자는 군대 훈련소에서 한달 동안 TV를 볼 수 없을 때 TV 시청에 대한 욕구를 강렬하게 느꼈다고 한다. “나도”라고 공감한다면 당신은 문화적으로 1960년대생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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