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파티는 끝났다
조지 패커 지음ㆍ박병화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636쪽ㆍ2만8,000원
미국인들을 영국문학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한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가 그린 20세기 미국은 이미 영욕으로 얼룩진 나라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1925)는 당시의 아메리칸드림이 불러온 물질적 타락, 그로 인한 정신적 공허를 특유의 세밀화 기법으로 드러낸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인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불평등은 커졌고, 일자리는 불안하고,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요컨대 타락할 물질조차 충분하지 않다. 언론인 출신의 저자가 쓴 이 책은 자유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내달려온, 아메리칸드림마저 사라진 최근 30여년의 ‘뉴 아메리카’를 다큐소설 기법으로 그린다. 저자는 미국을 ‘고삐 풀린(unwinding)’ 사회로 본다. 원작 제목이 ‘고삐 풀린: 뉴 아메리카의 이면사’다.
이런 사회에서 미국인들의 분투를 묘사하는 일은 피츠제럴드 시대의 그것보다 당연히 더 복잡다단하다. 저자는 평범한 세 시민을 중심으로, 유명인사 13명의 성공사와 세 도시의 변천사를 섞는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딘 프라이스는 야망을 품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바이오디젤 사업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오하이오의 제철도시 영스타운에서 태어난 태미 토머스는 도시의 흥망성쇠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제프 코너틴은 대학시절 조 바이든을 만난 후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좌절하고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린다.
“카트리나가 덮치기 한 달 전 월마트가 로킹엄 카운티에 최초의 대형쇼핑센터를 열었다. 6개월 후에는 두 개가 더 생겼는데 그 중 메이요든 중심가와 220번 도로 사이의 고속도로에 들어선 점포는 넓이가 1만4500제곱미터나 되었다. 고작 인구 9만명의 가난한 시골 카운티에 월마트가 세 군데나 생긴 것이다.(…)월마트 메이요든점에서 구하는 307명의 ‘동료’자리에 2500명이 지원했다.” “태미의 졸업반 시절 모습은 꼭 1940년대를 연상시켰다. 졸업앨범 속 여자 동창생들은 머리스타일이나 옷, 립스틱이 꼭 빌리 홀리데이 같았다.”
인물들의 경제력과 계급, 취향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들의 향연을 통해 저자는 산업의 흥망성쇠, 노조의 변질, 주류사회의 퇴폐 등 미국 변천사를 자연스럽게 은유한다. 그 사이 뉴트 깅리치 전 공화당 하원의장,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 등 미국의 또 다른 얼굴을 끼워 넣는다.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미국사회 단면을 그린 저자는 “모든 것이 변하는 시기에 남는 것은 목소리밖에 없다”고 적었다. 저자의 이런 복잡다단하고 서늘한 시선이 우리말 제목에서 단 번에 느껴지지 않은 것이 아쉽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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