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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좋고 아들 좋고 '목욕탕의 재발견'

입력
2016.01.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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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들이랑 동네 목욕탕 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아들이 아빠 등을 밀어주는 것도 아니지만 1만1,000원짜리(아들 4,000원) 목욕탕 갈 생각에 이 아빠는 주말이 다 기다려질 정도고, 아들은 목욕탕 이름을 연호하며 아빠 발걸음을 재촉한다.

물론 29개월짜리 아들과 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는 않다. 옷 벗기고 씻기고 닦이고 로션 바르고 다시 옷을 입히는 통상업무 외에도 미끄러져 넘어지지는 않는지, 탕 가운데의 공기방울 분수대(?)가 일으키는 물살에 넘어져 물에 잠기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신경 쓸 거리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제법 한눈 팔아가면서(?) 아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목욕탕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욕탕은 묘한 매력이 있다. 목욕탕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놀이공원도 가봤고 키즈카페도 무수히 다녀봤지만 이렇게 높은 수준으로 양자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최근엔 동네 목욕탕의 물갈이, 청소시간(새벽이 아니더라)까지 꿰찰 정도가 됐다.

목욕탕을 다녀오면 이런 부작용도 있다. 즐겁게 놀면서 체력소모(탈수)가 컸던 나머지 너무 잘 잔다는 거다. 엄마 아빠의 저녁식사 약속 장소에서 대자로 뻗어 자는 아들. 다행히 뒤에 깨서 좀 먹긴 먹었다.
목욕탕을 다녀오면 이런 부작용도 있다. 즐겁게 놀면서 체력소모(탈수)가 컸던 나머지 너무 잘 잔다는 거다. 엄마 아빠의 저녁식사 약속 장소에서 대자로 뻗어 자는 아들. 다행히 뒤에 깨서 좀 먹긴 먹었다.

아들은 목욕탕에서 뭘 해도 즐겁다. (둘이서 도대체 뭘 하기에??) 이 아빠가 샤워기 앞에 서서 씻는 동안 아들도 ‘비’를 맞으며 아빠 주변을 이리 저리 뛴다. 자리에서 비켜서면 아빠를 흉내 내 씻는 시늉을 한다. 이후에는 두어 번 뜨끈한 탕 속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바가지 하나 잡혀줬을 뿐인데, 그걸 띄워 잡고 서서는 중앙 공기 분수대(?)로 다가간 뒤 다시 뒤로 밀려나는 놀이를 무한반복 한다. 그러다 아들놈은 “이것 좀 봐요. 손이 쭈글쭈글해졌어요. 이제 나가야 돼요”라고 떠들지만 이 아빠는 여유를 더 부리다 나오는 식이다.

탕 밖에서도 잘 논다. 세숫대야에 비누로 거품을 만들고 그 위에 절수샤워기를 들고 “불났어요 불났어요 도와주세요”, “애앵애앵”, “발사”하는 소방차놀이를 한다.(뷔페식당과 달리 개월 수에 상관없이 입장료를 받는 사실에 처음엔 대단히 불쾌했지만,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터라 이 아빠가 특별히 할 건 없다. 언젠가는 너무 신이 난 나머지 괴성을 지르거나 옆으로 물을 튀게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들 스스로도 낯설고 위험한 곳으로 인식해 이 아빠의 통제에 절대 따른다.

목욕탕에서 아들이 잘 노는 것도 좋지만 목욕탕 놀이의 백미는 목욕탕을 나와서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목욕탕에서 논 뒤에는 귀가 후 따로 씻길 필요도 없을뿐더러 아들이 잠도 쉽게 잘 잔다.(갈아 입힐 옷을 잠옷으로 준비하는 센스 필요) 또 책을 읽어 주지 않아도(이게 얼마나 고강도 노동인지 알지 못했다) 스스로 침대로 기어 올라가 곯아 떨어질 정도다. 집에 와서 따로 풍선놀이, 싸움놀이를 할 필요도 없고 그에 따르는 층간 소음에서도 자유롭다. 야외 활동이 여의치 않은 이 겨울에 따뜻한 물 맘껏(?) 갖고 놀 수 있는 목욕탕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워터 파크가 부럽지 않다.

지난 여름 상암동 월드컵공원 바닥분수대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는 아들. 뛰노는 아이들 중에 아들놈이 제일 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여름 상암동 월드컵공원 바닥분수대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는 아들. 뛰노는 아이들 중에 아들놈이 제일 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아들놈은 유난히 물을 좋아했다. 지난 여름에는 아들이 바닥분수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대장균, 병원성 세균 운운하며 걱정했지만 이 아빠는 분수대로 달려드는 아들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대신‘그래, 이게 깨끗할 리 있겠어?!’ 같이 걱정하는 시늉을 했다.

현란하게 솟구치는 물기둥 사이를 아들은 쉬지 않고 뛰어 다녔다. 옷이 흠뻑 젖은 채로 15~20분은 쉬지 않고 누볐던 것 같다. 신나게 뛰노는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 그 사이 약간의 휴식도 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아빠가 하는 일이라곤 입술 색깔이 파래질 때 한번씩 물 밖으로 불러내 잠시 쉬게 하는 게 전부였다. 역시 이 이후에도 밥을 잘 먹었고 낮잠도 깊고 길게 잤다. 그런 날은 하루가 다 평온했다. 요즘 맛들인 목욕탕만큼 지난 여름에는 바닥분수대 덕을 크게 본 셈이다.

요즘 아들놈과 목욕탕 가는 낙에 산다는 이야기를 하면 다양한 반응들이 돌아온다. 대체로 부러움의 표현이었지만 그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너도 나도 몸 담그는 대중탕에 어린 애 데려가도 되냐?’ 또 돌이켜 보면 지난 여름 바닥분수대에서는 물이 더럽다며 자신의 아이를 분수대 밖으로 큰 목소리로 불러내는 엄마도 있었다.(아들은 그 옆에서 신나게 놀고 있고, 이 아빠는 흐뭇한 표정으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말이지!)

지난 여름 기억에 더해 이번에 또 그런 얘기를 듣고 아들한테 물안경을 하나 장만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러운’ 목욕탕 물이, ‘더러운’ 분수대 물이 눈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한 물안경이라기보다는 물기둥 사이를 눈뜨고 달릴 수 있도록 하는, 목욕탕을 놀이를 더 즐기게 해줄 물안경 말이다. 아들이 병균에도 강해서 더 많은 놀이를,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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