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편성에 합의한 목적예비비
전문가들 “즉각 집행 필요” 목소리
정부, 부처간 논의조차 않고 신중
“교육청 등 자구노력 압박용” 분석
보육대란을 막기 위해 지난 해 정치권이 편성에 합의한 3,000억원의 목적예비비의 즉각적인 집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목적예비비가 이달 말로 다가온 보육대란의 현실화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지원책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시도교육청, 지방의회와 대립하고 있는 정부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목적예비비를 활용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재정여건을 감안하면 국회를 통과한 목적예비비 3,000억원의 집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어린이집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1년치 전액을 편성한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재정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정부의 목적예비비는 규모도 크고 즉시 집행도 가능해 중앙과 지방이 첨예하게 맞서는 현재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목적예비비는 예산을 초과하는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특정 용도로 쓰도록 책정한 예산으로 국무회의를 거치면 바로 집행할 수 있다.
발등의 불이 떨어졌지만 정부는 목적예비비 편성을 위한 부처간 본격적인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작년 대비 1조8,000억원이 증가한 41조2,000억원에 달하고 ▦지난해 부동산 시장 회복 및 담뱃세수 증대로 지자체 전입금이 1조원 이상 늘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즉각 지원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교육부는 “내부 논의는 하고 있으나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도 소극적이다. 임형철 기재부 교육예산과장은 “교육부에서 신청이 와야 협의를 시작하겠지만, 올해 교부금 증가분만 해도 누리과정 사업 진행에 충분한 게 사실”이라고 기존 정부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해에도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비슷한 갈등을 빚었지만 정부는 국회를 통과한 목적예비비 5,000억원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지원한 바 있다.
정부가 목적예비비 지원에 소극적인 이유는 지방교육청과 지방의회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백웅기 상명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정부는 교육청으로부터 자체 예산절감이나 지방채발행 등 최소한의 자구노력을 끌어내기 위해 목적예비비 카드를 전략적으로 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각 주체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만큼 정부가 목적예비비를 즉시 사용하려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는 일부 교육청과 지방의회도 자구노력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이날 경기 수원시는 도의회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피해가 우려되자 시 예산으로 보육비 159억원을 긴급지원하기로 했다. 관내 3~5세 어린이 1만1,339명의 4~5개월치 누리과정 예산(유치원 제외)에 해당된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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